[ET시론]지역 학·연협력 생태계 조성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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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 5126만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들어섰다. 인류학자들은 이 추세가 계속되면 2100년에는 3000만명 미만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절벽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2021년 수도권 인구는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섰고,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105곳(42%)이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역소멸 위기는 청년인구 유출과 수도권 쏠림 현상에서 기인하며, 주로 직업·교육·주거 목적으로 수도권 전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차원에서 수도권 집중 현상 해소 및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도 기업 혁신·일자리 수요를 토대로 기업 주도 인재 양성 체계 강화, 지역 중소기업 생태계 조성, 지역혁신기관 연계 강화, 지역인재 정착 지원 등 국정과제를 선포하는 등 지역혁신 인재 확보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교육부는 2020년 지방자치단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RIS), 2021년 디지털 신기술 공유 대학사업, 2022년 LINC 3.0 추진 등 지역 대학 중심의 산·학 협력 지원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 지원 연구개발(R&D)사업도 산·학·연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산·학·연 R&D 투자는 2010년 이후 규모가 약 5배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정부 노력과 달리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기업 집중 현상은 오히려 심화하고 있으며, 수도권-비수도권 총생산·총소득 격차도 더 벌어지고 있다. 특히 청년층 선호도가 높은 창업기업은 수도권에 약 54.8%가 몰리는 등 수도권 집중 현상이 더 크다. 지역 대학 주도 산·학 협력 사업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역 신산업 육성으로 이어지는 혁신 임계점까지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 대학은 연구 성과, 연구 인력, 연구 장비·시설 등 보유한 혁신 자산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보유한 R&D 인프라를 활용해 이공계 청년 연구자를 양성하는 이공계 전문기술 연수사업이 박사후연구원에게 어느 정도의 R&D 연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 또한 중소·중견 기업이 간절히 요구하는 석사급 전문 연구인력의 경우 9개월 미만 직무훈련만으로는 실무인재 양성 및 취업 연계에 어려움이 많다. 결국 산·학·연이 공동 연구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추후 근접지원이 가능한 전문 연구인력 양성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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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를 비롯해 교육부, 산업부, 중기부 등 여러 정부 부처에서 지역 혁신을 위해 산·학·연 협력을 지원하고 있지만 부처 간 협업이 미흡, 단발성으로 종료되는 경우도 많다. 산업부와 중기부는 지역 전략산업을 지정·육성하고 있지만 지역 간 유사·중복 분야 경쟁만 심화하고 있는 등 국가 필수 전략기술 확보와 지역 전략산업 육성 방향을 일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혁신 주체인 테크노파크, 지역대학, 지역 소재 출연연(분원 포함), 전문연구소 등 공공연구기관이 협력하는 정부 지원사업은 종료 후 또 다른 사업의 수주 경쟁에 몰두하는 현상이 있는 등 지역 주도 과학기술 통합정책 수립도 요구된다. 최근에는 지역 도전과제 해결과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해 사회문제 해결을 통한 융합형 산업 육성,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산업과 기술 및 혁신 주체를 통합하는 플랫폼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사회·경제 문제 해결, 민·산·학·연·관 협업, 지역 기반 혁신, 문제 해결형 지역자원 조직화를 강조하는 전환적 지역혁신론이 대두되고 과학기술과 사회문제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지역 주도 R&D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융합과 혁신을 동시에 추진해야 할 시기다. 옛 동독의 드레스덴은 통일 이후 서독지역으로 인구 이동, 저출산, 고령화 등 문제로 실업자가 7만명 증가하고 빈집이 20% 증가하는 등 현재 우리나라 지역 사회와 유사한 문제를 겪었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기초과학연구소를 유치하고 5000여명의 과학자가 과학기술 산업도시 조성을 주도하면서 20년 만에 옛 동독 지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변했다. 현재 드레스덴에는 3개 막스플랑크연구소, 5개 라이프니츠연구소, 10개 프라운호퍼연구소 등 정부 주도 기초과학연구소와 3만5000여명 규모를 자랑하는 드레스덴공대 등 10개 지역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작센 주정부의 기업 유치 노력에 힘입어 폭스바겐·지멘스 등 세계적 기업과 AMD·인피니온 등 반도체 기업이 대거 입주한 유럽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인 '실리콘 작센' 중심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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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인력의 수도권 유출로 지역 내 고급인력난이 심화하고, 이로 인한 첨단기술 공동화 및 기업경쟁력 저하라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청년 인재의 지역이탈 방지와 기업 수요에 대응한 기술인력 공급이 필요하다.

중소·중견기업이 구인난을 겪는 원인은 인력양성 프로그램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현장 체험만으로 기술을 습득하는 상당수 교육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비단 지역뿐만 아니라 국내 중소·중견·벤처기업은 첨단 과학기술 개발과 인력 확보의 어려움에 따라 세계적 경쟁력 확보의 한계에 부닥친 상태다.

현재 출연연이 보유한 우수 기술과 지식, 첨단 인프라 및 연구 역량을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한 산업 발전에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대다수 출연연이 운영하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를 활용하면 출연연의 우수 인프라와 UST 교육시스템을 결합해서 중소·중견기업이 원하는 기업 맞춤형 공동 R&D와 인력양성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다. 지역대학 연구실을 학·연 오픈랩으로 지정해서 출연연 R&D의 공동 주체로 활용한다면 지속적인 연구개발 인력 확보도 수월할 수 있다. 출연연과 대학이 인력 및 인프라 자원을 공동 활용해서 우수 인력을 양성하고 출연연-민간 공동연구로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산·학·연 네트워크 기반 지역혁신 R&D 협력 생태계가 하루빨리 조성되길 기대한다.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 ljh1239@kims.re.kr

<필자>이정환 원장= 1982년 재료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시작으로 융합공정연구부장, 산업기술지원본부장, 선임연구본부장, 부소장, 소장을 지냈다.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에서 독립한 한국재료연구원으로의 원 승격을 주도했고, 2020년 한국재료연구원 출범과 함께 초대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한국소성가공학회장, 한국엔지니어연합회 창원지역회장, 한국산업기술인회장, 경남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