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로봇은 '차량'인가, '사람'인가.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질문은 배달로봇 주행과 관련한 현장에서 실제로 논의된 주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배달로봇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배달 인건비 상승, 감염 차단을 위한 비대면 배송 등으로 주문이 치솟는 추세와 궤를 같이한다. 배달로봇이 '사람'으로 간주되면 인도로, '차량'으로 분류되면 차도로 다녀야 한다.
현행 법령상 자율주행로봇은 차로 분류돼 있어 인도 통행이 불가하나 주행속도나 안전문제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차도로도 다닐 수 없는 실정이다. 미국은 버지니아주, 워싱턴DC 등 일부 주에서는 배달로봇을 보행자로 규정하는 법 개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배달 속성상 단거리인 사례가 많고, 주택가에서는 인도로 접근해야 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똑똑한 로봇을 제대로 활용하자면 관련 '룰'부터 갖춰야 한다. 이와 관련해 올해 초 산업통상자원부는 자율주행로봇의 보도·횡단보도 통행 허용을 당초 계획인 2025년에서 2년 앞당겨 2023년까지 완료한다고 밝혔다.
인간이 갈 수 없는 곳, 가지 않는 그곳에 로봇이 있다. 수술용 로봇과 산업용 로봇이 그렇다. 로봇을 활용한 수술은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고 손떨림도 없으며, 무엇보다 절개의 범위를 줄여줌으로써 수술 이후 회복시간까지 단축하기에 많은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널리 활용되고 있다. 산업용 로봇은 말할 것도 없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단순 반복적이어서 기피하는 업무를 해결함은 물론 피로와 부주의로 인한 실수 등을 줄여줌으로써 산업재해 감소와 삶의 질 향상 효과도 거두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는 산업혁명 이후 늘 노동계 머리를 짓눌렀고, 정책 당국이 풀어야 할 숙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의료용 로봇은 사람이 로봇을 조종하기 때문에 실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정용 로봇이 생겨났다고 해서 인력이 필요로 하는 영역을 모두 대체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게 안에 설치한 키오스크 확산이 오히려 외식업 매출 증대를 이끌었다든지, 인공지능(AI) 상담 기능 도입 후 상담원 퇴직률이 절반으로 줄었다든지 하는 기사는 우리의 우려가 빗나갔음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로봇으로 인해 줄어든 일자리보다 파생되는 새로운 일자리가 더 컸기에 시장경제 체제는 21세기 들어서도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 이에 비례해 '기술이 인간을 편리하게 할 것인가, 인간의 자리를 위협할 것인가'라는 인류의 질문은 힘을 잃어간다. 인간과 로봇이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닌 바야흐로 공존하는 시대로 들어섰다는 의미다.
세상에 처음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마부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정책 당국이 자동차의 속도 규제를 만들었던 영국 '적기조례(Red flag act)' 사례에서 배우듯, 과학기술 발전은 규제로 틀어막기보다는 활용에 초점을 맞춰 부작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옳다는 교훈에 이른다.
막거나, 없거나, 필요하거나
로봇은 업무 수행 난이도에 따라 가장 낮은 단계인 '단순보조'부터 '인간과의 협업과 공존' 그리고 보다 고도화된 '자율수행'에 이르기까지 기술 진화를 거듭해왔다.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반려동물을 대신할 반려로봇이 흔해지는 시대가 곧 올지도 모르겠다. 로봇의 언어 이해 수준도 단순한 지시어 해독에서 자연어 분석까지 발전해 인간의 최종 요구까지 파악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철이와 메텔, 즉 당시에 인조인간이라 불렸던 로봇과 인간의 애틋한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40여년 전 인간의 상상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활동을 지원하거나 행동을 통제하는 법률, 즉 규제가 자연스레 뒤를 잇는다. 정보기술(IT) 강국인 대한민국 정부도 로봇 분야 규제혁신 로드맵을 2020년 만들었고 올해 6월 민간협의체 구성을 통해 규제혁신 로드맵 2.0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로봇 산업을 활성화하는 규제로는 어떤 게 필요할까.
우리 정부는 규제 유형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기존의 규제가 로봇 활용을 막는 것이고, 둘째 현실에 요구되는 규제나 법령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마지막은 우리나라 도시 기반 인프라가 로봇 실증에 적합하지 않아 로봇 활용성 자체 검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다.
앞으로 정부는 기존에 모호했던 로봇 분류체계 개정, 성능평가 및 안전기준 제시, 로봇활용을 위한 기반 조성 등 개선방향을 도출해 개선을 추진한다고 한다.
최근 배달로봇의 승강기 탑승 허용이나 배달로봇 인도 통행 허가를 앞당기겠다는 정부 차원 방침을 환영한다. 그러나 주차 로봇을 운행할 법적 근거가 미비하거나 로봇 활용 표준을 정할 안전기준을 갖추지 못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인증시스템도 고도화할 때 각종 아이디어의 인허가도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규제 마련과 개선에도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사용 환경을 사전에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현장과 겉도는 규제의 출현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다.
로봇의 동선을 일관되게 보장하는 규제의 예를 들어보자. 한국의 경우 엘리베이터를 통해 로봇이 건물로 진입하는 길은 열려 있다. 비대면 배달 목표인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를 달성하려면 건물 내에 진입한 로봇이 직접 미닫이문을 열어야 하고, 경사로를 통과해 주문한 사람의 두 손까지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건물 내 속도 규제 △인적·물적 사고 대비 △로봇 운행 시 불특정 다수의 촬영에서 발생 되는 개인정보 처리 문제까지 종합적인 표준과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건물 입구만 로봇에 열어줬다고 해서 필요한 기준이 다 세워졌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의료 산업에 쓰이는 재활로봇이 보조금 지급이나 수가 문제로 인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는 현실도 타개해야 한다. 의료 재활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고 있는데 워낙 높은 장비 가격 탓에 병원 측에서도 쉽게 도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외에서는 사설 보험 서비스 등 보험 제도가 다양한 덕에 의료로봇 적용을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유일하고 그나마 올해 2월부터 선별급여가 적용된 분야도 뇌졸중 환자 보행 분야에 한정돼 있다. 의료현장에서 국산 수술로봇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로봇산업 육성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효율적 역할 분담과 전략적 제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울시의 비교 우위 산업으로 로봇을 활성화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서울은 모든 산업이 중심이 되다 보니 로봇산업 육성이 정책 1순위가 되기 어려운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서울시는 최근 수서 지역에 로봇 거점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다. 타 지자체에도 로봇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각 지역마다 특성과 중점 분야를 나눠 접근하는 것도 미래지향적 전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은 서비스 산업 중심의 로봇 기술을, 지역에서는 고령화 사회의 노동력 보완을 위한 로봇 기술을 중점 개발하는 식으로 협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로봇친화 환경까지 준비하는 일본
한국이 여전히 경직된 규제 개선에 매달리고 있다면 선진국은 로봇 산업 저변 확대를 위해 지원책뿐만 아니라 로봇이 다니기 편리한 환경 구축까지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범부처 사업으로 '국가 로봇 계획'(NRI:National Robotics Initiative)을 수립, 2011년부터 로봇 육성정책 근간으로 삼고 있다. 2021년부터는 NRI 3.0을 발표하고 제조업, 의료, 우주탐사, 차세대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로봇 기술 통합에 초점을 둔 산업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역시 국가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2015년부터 '로봇 신(新)전략'을 발표했으며, 2019년부터는 로봇에 의한 사회 변혁 추진 계획도 시행하고 있다. 총리실 산하에 '로봇 혁명 실현 회의'라는 조직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또 매장이나 공공시설 보급 확대 차원에서 매장 내 상품 진열, 시설 내 길 조성과 같은 환경조성 시도까지 이뤄지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 중심으로 조성된 인프라를 이제는 로봇이 다니기 편리한 로봇 친화 시설로 내어주는 변화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도 2021년부터 5개년 로봇산업발전계획을 발표하며 로봇 활용 증대, 로봇 기반 기술 향상, 로봇 분야 금융지원 확대 등 정부 주도 로봇 육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엄청난 자본과 막강한 기술로 무장한 주변 강국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자면 대한민국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규제 분야는 미국처럼 시스템을 네거티브 체계로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 현실 여건이 이를 당장 허용하기 어렵다면 일본의 포지티브 규제를 참고해도 좋다. 일본 같이 포괄적 규제 개선 정책을 벤치마킹하면 로봇 기술을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나아가 로봇의 실증이나 보급 확산을 촉진하는 로봇 보험을 도입하고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로봇 산업에 선제적 상상력을
MIT 양자역학 공학자인 세스 로이드는 AI의 어마어마한 발전에도 “로봇은 아직도 자기 신발끈을 묶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로봇공학계 선구자이자 전설로 통하는 로드니 브룩스는 “인간과 로봇의 구별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설정 방식은 이처럼 무한대에 가까운 잠재적 영역을 갖고 있다.
로봇을 기존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본다면 그것은 전통적 로봇을 보는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로봇은 외부 환경을 데이터를 통해 인지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자율적인 수행까지 해내는 지능을 가진다. 스스로 지시사항을 변경하는 로봇도 상상할 수 있다.
정부는 20년에 발표한 로봇산업 로드맵에 '선제적 규제'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인류의 삶을 미리 내다보고 로봇의 활용 범위를 넓히자면 선제적 규제에 더해 로봇을 활용한 '선제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임성은 서울기술연구원장 ych5534@sit.re.kr
<필자 소개>
임성은 원장은 서울시립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행정고시 출제·선정 위원, 서울특별시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국책연구원 평가위원를 거쳐 현재 서울기술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
김현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