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현의 테크와 사람]<10>게임에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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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한 지인의 가족이 겪은 고통을 지켜보면서 게임산업의 여러 면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가 게임에 푹 빠진 나머지 아빠의 휴대폰을 통해 무려 100만원 이상의 아이템을 구입했다. 물론 아빠의 허락은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 가족이 돈을 돌려받는 과정은 지난했다. 결국 일부는 포기하고, 집안의 모든 휴대용 전자기기에는 암호가 걸렸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에 압도돼 큰 상처를 받게 됐고, 부모는 스스로 책망하면서 아이에게 신경을 더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7~8년 전에는 한 방송작가를 만났다. 중학생 아들이 밤새 게임만 해서 마음이 다 타고 재만 남았다고 했다. 머리는 좋아서 공부하면 잘할 것 같은데 게임에만 빠져 있다가 게임 폐인의 삶을 살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고통을 말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얼마 전 우연히 다시 만나 그 아이의 근황을 물으니 다행히 명문대 공대에 진학해서 게임제작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 당시 필자에게 호소하던 고통마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많은 게임산업 규제가 시도됐다. 특히 흔히 '게임중독'이라고 부르는 과의존성에 대해서는 부모의 힘이 부치니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게임 시간을 규제하고, 아이템 거래와 관련한 불법행위를 엄단해 달라는 호소가 사회 전반에 넘실대었다.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 게임을 모델로 삼아 성장하던 중국 게임산업이 한국을 능가하는 다양성과 스토리텔링까지 갖추고 세계 시장의 메이저로 떠올랐다. 그동안 한국 게임산업은 거대한 부를 축적한 일부의 성공사례를 제외하면 다양성을 잃고 어떻게 수익성을 올릴 것인가에만 골몰한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고 있다. 게임 진행상 이용자가 지갑을 열지 않으면 제대로 게임의 스토리라인을 타고 진행할 수 없다는 불만도 팽배해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돈을 치러서 아이템을 사고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너무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장삿속이 한국 게이머들의 실망감을 자아내고 있다는 비판은 분명 일리가 있다.

수년 전 동료 교수들과 게임 관련 연구 얘기를 하다가 과연 우리 스스로 게임을 절제하고 정말 즐기는 선에서 멈출 수 있는지 테스트도 해볼 겸 같은 게임을 함께 시작하기로 했다. 필자는 그때 시작한 게임을 6년째 하고 있고, 승수가 무려 1만을 넘었다. 하지만 다른 두 분은 불과 2~ 3년 만에 '만렙' 가까이 도달했다. 그런데 우리 셋이 대체로 동의한 부분이 있다. 게임에 빠져들고 나면 자제력이 아무리 좋은 성인이라 하더라도 중간에 빠져나온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 같다는 점이다. 표본이 너무 적어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되겠지만 40대 남성에게도 게임을 자제하고 조절한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임은 틀림없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질 때 야단만 치는 부모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에 관심을 보여 주고, 때로는 함께 플레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청소년기에 이미 게임에 빠진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감대를 형성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공감 표명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학교가 나서야 한다. 최근 점차 확장되고 있는 '정보' 관련 교과에 조금 더 힘을 실어야 한다. 그래서 게임이 가질 수 있는 의존성을 미리 교육하고, 그러한 의존성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길러지는가 하는 원리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의존성이 게임들이 갖는 시나리오, 시각적 요소, 심리적 요소 등에 의해 의도된 것임을 학생들이 미리 이해하고 있을 때 절제가 가능해지는 공간이 열릴 것이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alohakim@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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