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시대 주거 형태는 바둑판처럼 반듯하지 않다. 외출을 하려면 비뚤비뚤한 길을 따라 거의 모든 집을 둘러보며 나가는 구조다. 담은 낮아서 집 안을 훤히 볼 수 있고, 대문은 없거나 열려 있다. 마을 공동체의 협업이 필요한 농경사회 특성상 가족과 다름없고, 사생활이 없다.
산업시대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는 아파트다. 직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산다. 출퇴근할 때 다른 입주민을 보기가 쉽지 않다. 보안이 철저하고, 사생활이 지켜진다. 삭막할 순 있지만 직장에서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동네 주민과 어울리지 말고 충분히 휴식할 수 있다. 가구별 규모가 다를 순 있어도 겉모양이 같아서 차별받는다는 느낌도 없다. 많은 가구를 입주시켜야 하는 특성상 천장이 낮다. 낮은 천장이 입주민의 창의력을 막는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집은 쉬는 곳이다. 창의적 활동을 하는 곳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일터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가족생활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가장을 편하게 쉬도록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가부장적 질서를 뒷받침했다. 오늘날 남자들 대부분이 집에서 멍하게 있거나 TV만 보는 역사적 원인이다. 아파트는 직장에서 일을 잘하기 위한 쉼터일 뿐이므로 가장의 휴식을 방해하는 활기는 없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니 공중전화부 같은 것이 생겨났다.
정보시대의 주거 형태는 어떤가. 인간의 욕망은 오프라인을 떠나 온라인, 모바일, 디지털 공간으로 표출됐다. 세상은 CCTV와 사진 촬영, 음성 녹취, 영상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 등 기기로 넘쳐 난다. 신용카드·교통카드 사용에 스마트폰의 위치정보 기능을 합치면 현대인은 유리알 인간처럼 사생활이 없다. 유일한 도피처가 집이다. 가족 간에도 사생활이 중요하다. 각자 방에서 따로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방해하는 층간 소음, 아이들 웃음, 강아지 짓는 소리는 경고를 받기 쉽다. 보안도 더욱 강화된다.
앞으로의 주거 형태는 어떠해야 할까.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아파트·오피스빌딩·학교같이 천편일률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해야 할까. 미국의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을 키운 차고 같은 것을 설치하고 집의 천장을 높게 해야 할까. 미래는 집을 떠나는 순간 모든 사생활이 기록되는 사회다. 집에서도 온라인에 접속하면 자신의 모든 취향과 기호와 정보가 읽히는 세상이다. 미래의 주거 형태는 사생활을 더욱 보호하는 형태가 돼야 하고, 오피스와 집이 따로 없는 만큼 집에서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그렇다고 행복한 생활의 장이 돼야 할 가정이 일터로만 쓰이면 가족 갈등만 양산한다. CES 단골메뉴도 스마트홈이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집 밖에서도 가스, 전기, 밥솥, 에어컨, 공기청정기를 통제할 수 있다. 집 안에선 냉장고에 연결된 화면을 통해 식료품의 신선도, 가족의 영양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병·의원과 연결된 원격의료시스템을 이용해 건강 점검을 할 수도 있다. 회사와 통신망으로 연결돼 홀로그램, 메타버스 등을 이용해 동료·고객과 소통하며 업무를 한다. 쇼핑몰과도 연결돼 옷을 입거나 가구를 배치해 볼 수 있다. 로봇이 청소, 설거지 등을 대신한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러나 해킹이나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가정을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 기업의 오랜 꿈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혼자 또는 가족끼리만 있을 공간 확보와 주거 자유가 중요하다.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고 살 권리도 보장하자. 영화 '슬리버'처럼 임대인이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집마다 CCTV를 설치하고 유지·보수가 필요한 곳이 없는지 살펴준다면 고마워해야 할까, 화를 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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