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동 대표의 메타버스 제대로 타기]<5>탄생의 기원

Photo Image

“배달부는 예전에 소프트웨어를 만들곤 했다. 지금도 가끔은 그런 일을 한다. (중략) 그래서 그는 지금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 명석하고 창의적일 필요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협동심을 발휘할 필요도 없다. 원칙은 단 하나다. 배달부는 모든 책임을 지면 된다. 만일 30분 안에 피자가 도착하지 않으면 피자를 공짜로 먹는 건 물론 배달부를 총으로 쏘고 차를 빼앗고 소송을 걸어도 무방하다. 배달부가 이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그의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오래 견딘 직업이고 벌이도 좋았다. 게다가 일을 시작한 이래 피자 배달에 단 한 번도 21분을 넘긴 적이 없다.”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미국 작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1992년에 쓴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의 일부분이다. 무려 30년 전에 나온 이 소설에서 작가는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상을 소개한다. 주인공 히로는 현실에서는 30분 피자 배달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피자 가맹점 코사노스트라의 배달부이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 그는 뛰어난 해커이자 긴 칼 두 자루를 늘 등에 차고 다니는 세계 제일의 검객이다. 여기서 히로는 아주 좋은 집에서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는 뛰어난 존재로 살며, 메타버스의 신종 마약 스노 크래시를 둘러싼 배후의 실체를 찾아 나서는 영웅이다.

그렇게 히로는 현실 세계에서는 조그만 창고를 나누어 쓰지만 메타버스에서는 커다랗고 좋은 집을 가질 수 있었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통찰력을 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발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늘과 땅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퓨터 모니터와 같은 검은색이다. 메타버스는 늘 밤이며 스트리트는 항상 지나치게 화려할 정도로 환하다. 마치 돈이 무제한으로 많고 물리적인 한계가 없는 라스베이거스라고나 할까. 그러나 히로와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상당히 훌륭한 프로그래머여서 동네 분위기는 고상하다. 집들은 현실 세계의 집과 비슷하다. 빅토리아풍의 집도 있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미국 건축가)가 설계한 집을 흉내 낸 주택도 두어 채 보인다.

2022년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메타버스 서비스들의 여러 공간과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바타들의 모습이 작가가 30년 전에 창조한 세상에서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하게 묘사돼 있다. 그의 이러한 상상력 때문에 그는 VR 망막 디스플레이 기기를 생산하는 매직 리프(Magic Leap)와 같은 IT 스타트업에서 최고 미래전략 임원으로 근무하기도 한 흥미로운 경력이 있다. 이 소설은 정말로 많은 IT 사업가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젠슨 황 엔디비아 CEO는 “미래의 메타버스는 현실과 아주 비슷할 것이고, SF소설 '스노 크래시'에서처럼 인간 아바타와 AI가 그 안에서 함께 지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세컨드 라이프를 만든 필립 로즈데일 린든랩 CEO은 “소설 '스노 크래시'를 읽고 내가 꿈꾸는 것을 실제로 만들 수 있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구글 창립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스노 크래시'를 읽고 세계 최초의 영상 지도 서비스인 '구글 어스'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미국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곳이며, 자유롭게 무기를 소유하고 그 결과 세계에서 경제가 가장 엉망인 곳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이들이 모여서 만든 새로운 자유를 누리는 세상인 메타버스에도 비슷한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거기에도 겉으로는 기부를 많이 하는 착한 기업가의 가면을 쓰고 뒤에서는 음모를 꾸미는 악당도 있고,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도 있으며, 위선적인 아바타를 앞세워서 사람을 속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빌런들도 등장한다. 작가가 20년 전에 창조한 가상세계조차도 완벽한 유토피아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통찰이 간파하고 있었던 것일까.

메타버스 열풍을 타고 최근 닐 스티븐슨은 비트코인재단의 공동 창립자 피터 베세네스(Peter Vessenes)와 함께 '라미나 1'이라는 이름의 무료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메타버스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예측할 수 없다”면서 “그래서 메타버스를 여는 것은 모험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창동 루씨드드림 대표 cdkim@LDfactory.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