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20)개인정보의 패러다임(공동정보, 개인정보, 협력정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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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한 시대의 과학자들이 공통으로 받아들이는 가치관, 이론, 기술을 패러다임이라고 했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 만드는 혁명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뒤집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왔고, 뉴턴의 역학을 뒤로하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왔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패러다임의 충돌을 거쳐 새로운 패러다임이 받아들여진 것이 과학 발전 역사다.

디지털 시대는 그동안 겪지 못한 문명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동안 겪지 못한 위험도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위험사회'에서 중대한 위험의 일상화를 현대산업사회의 특징으로 규정했다. 과거 위험은 자연재해나 전쟁에 국한되었지만 현대 위험은 과학기술 발전과 정치, 경제, 사회 등 요인이 더해서 일어나는 복합적이고 인위적인 위험이다. 위험은 전염성이 강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빈부와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안전 가치가 평등 가치보다 중요해진다.

데이터시대 개인정보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 과거 왕조시대에는 국방·세금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 백성의 정보를 수집, 이용했다. 농업근대화 시대에는 농업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촌락별로 정보를 공유했다. 논밭이라는 일터를 함께하니 옆집에 일손을 거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일은 잘하는지, 학교에 다니는지, 농기구가 어떤 것이 몇 개 있는지 알아야 했다. 동네 길은 비뚤비뚤해서 모든 집을 거쳐야 동구 밖에 나갈 수 있었다. 여기서 개인정보의 개념은 함께 알아야 하는 공동정보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산업화·정보화시대로 넘어가면서 다른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엄격한 출퇴근시간으로 일터와 가정이 나뉘었다. 굳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대단지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도입은 바로 옆에 사는 사람과의 교류도 필요없고, 보안이 좋아서 일터에서 돌아오면 오직 쉴 수 있는 공간 제공에 중점을 두었다. 산업화에 최적인 주거환경이다. 개인정보를 옆집과 나눌 필요가 없고, 집에선 가족과 쉬었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가 정비됐다. 개인정보는 정보주체의 엄격한 동의가 없는 한 이용할 수 없다. 동의제도가 중요한 이유였다. 이제는 데이터를 연료로 작동하는 인공지능(AI)이 만드는 디지털사회다. 데이터를 가둬 두고선 성립할 수 없고, 세계 경제전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개인정보는 더 이상 사생활 공간에 숨을 수 없게 됐다. 가명·익명 처리를 통하면 재식별의 위험이 제로가 되지 않더라도 이용할 수 있게 개인정보보호법 등 데이터3법이 개정됐다. 바야흐로 협력정보 시대다. 기업 등 개인정보처리자의 데이터 활용 확률이 높아졌고, 더 높아져야 한다. 그것을 이용해 인공지능 등 디지털 산업을 키워야 한다. 그 대신 개인정보는 동의만으로 이용 여부를 따지는 시대에서 벗어나 위험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데이터를 뺏기면 사생활 침해를 넘어 생명·신체·재산이 위험해진다. 데이터 위험으로부터의 안전도 중요하다. 자신의 개인정보를 소유하고 생산한 주체가 직접 자신의 정보를 보호,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데이터의 질적·양적 수준에 따라 그 소유권과 가치를 평가받고 보상받아야 한다. 데이터를 많이 생산해서 기업에 도움이 되는 행위는 데이터 기여를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 폭증에 따른 데이터 중독 등 부작용도 해소해야 한다. 데이터는 그 질적·양적 수준에 따라 산업 시장의 특허상품도 되고 문학·음악·미술 같은 저작 표현물도 된다. 데이터를 문화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를 서로 차지하려는 글로벌 데이터 전쟁에도 대비해야 한다. 데이터 독과점을 용납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협력정보 시대의 데이터 패러다임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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