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적자 수렁에 빠졌다. 증권가는 올해 한전이 17조원에서 많게는 30조원까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5조8601억원으로 역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한전은 올해 1분기에만 지난해 연간 적자와 비슷한 규모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상 초유의 재무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한전은 회사채를 발행해 손실을 메우고 있다. 올해 1분기에만 약 10조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년이면 어려워진다. 내년도 결산 시점에는 한전의 올해 당기순손실 분이 사채 발행 한도에 포함된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누적 사채발행액이 사채 발행 한도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의 적자 누적은 지난해 급등한 전기 연료비를 요금에 반영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제도 도입 후 여섯 차례 연료비 조정에서 네 차례나 유보 권한을 발동했다. 유보 권한을 발동하지 않은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 가운데 한 차례는 전기요금을 인하해서 실질적으로는 한 번도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았다. 올해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을 인상하긴 했지만 지난해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상쇄하기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현재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면서 대응책을 찾고 있다. 한전이 일상적으로 시행하는 계통 투자까지 다시 들여다보면서 '생존'을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달 발전사들의 이익을 축소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전가할 수 있는 전력시장규칙개정까지 추진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대표 공기업인 한전이 발전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하면 전력산업 생태계가 부실해지고, 신산업 투자 동력도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가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근본 해법은 전기요금에 원료비를 반영하는 전기요금체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달성하기에는 어려운 목표다. 이 때문에 정부가 한전 재무 상황을 면밀히 살피면서 비상 상황을 대비해 공적 자금 투입도 고민해야 한다.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은 소비자 세금을 감면하거나 전력사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재정 보조 정책을 벌이고 있다. 이례적인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정부가 팔을 걷은 셈이다. 우리 정부도 과감한 결단을 고민해야 한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