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에 장착된 인공지능(AI) '시리'를 처음 상상한 것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미국 국방부였다. 미국 국방부는 AI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연구비 2억달러(약 2500억원)를 지원했으며, 미국 25개 대학과 연구기관 연구원 300여명이 참여했다. 투입된 연구비나 인력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아이폰이 나오기 4년 전에 이 연구가 시작됐다는 사실도 놀랍다. 이후 잡스는 '시리'라는 벤처기업을 인수하고 음성개인비서 부문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대한민국이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시사점이 여기 있다. 정부가 도전적인 과제를 던지고 그 답을 찾아낸 기업들을 적극 육성하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즉 민간이 마음껏 혁신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장을 열고 길을 터 줘야 한다는 뜻이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 출범을 앞두고 데이터와 플랫폼에 쏠린 관심이 뜨겁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디지털 기술(AI·IoT·클라우드·모바일 등)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혁신 플랫폼으로 모든 정부 부처를 하나로 연결해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복안이다. 정부의 모든 서비스를 한 곳에서 통합 제공하는 '원사이트 토털 서비스', 개인이 다양한 행정 데이터를 입력해서 복지·의료기록·건강정보 등을 받는 '마이AI포털' 등이 그 예다. 데이터는 쌓이고 상호 연계될수록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나 과거 정부의 행정 데이터 관리는 부처 칸막이를 넘지 못했고, 데이터 연계·공동 활용을 위한 컨트롤타워와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부재했다.
더욱이 인구절벽, 연금개혁, 고용, 물가, 주택·부동산 문제 등 정부가 풀어야 할 사회·경제적 문제는 고차 방정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서로 연계되고 상호 검증된 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연장선에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데이터 공유·활용체계 구축에 있다. 과거 정부는 경부고속도로(1970~1980년대), 초고속 인터넷망(1990~2000년대)을 통해 국가 발전을 견인해 왔다. 마찬가지로 초연결·초융합 시대인 지금은 전 국토의 행정 및 공간 정보 데이터를 하나로 모으고 연계·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 '디지털 트윈국토'가 필요하다.
'디지털 트윈국토'는 전 국토를 가상공간에 똑같이 구현하여 입체분석·시뮬레이션·시각화 등을 통해 국토·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디지털 SOC 플랫폼이다. 정부·자치단체·공공기관·민간이 이를 공동 활용하게 된다면 국민들이 체감하는 행정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다양한 분야별 산업 혁신을 통해 대규모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디지털트윈을 선도하고 있는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공간정보 데이터 거버넌스'와 '디지털 트윈국토'의 중요성을 수차례 피력한 바 있다. 디지털트윈이 활성화되려면 데이터 표준화와 품질관리를 위한 거버넌스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정부부처·자치단체·공공기관·민간이 공동 활용하기 위한 플랫폼 구축이 가능하다.
LX공사는 2018년부터 전주시와 협력해 행정·민간 데이터를 융·복합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했다. 또한 LX공사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10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현실과 동일한 가상 환경을 구축하고 분석·시뮬레이션을 거쳐 효율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디지털 트윈국토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디지털 트윈국토'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시작이자 과정이며, 미래이다. 다만 이를 위해 세 가지 분야별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먼저 '데이터 혁신'이다. 지상·지하·실내 정보를 상호 연계하고, 정·동적 데이터를 결합해 고정밀 3차원 공간정보로 구축·관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신기술을 도입하고, 데이터 갱신 주기를 단축해 국민 체감형 서비스로 연결하는 것이 궁극적 방향성이다. 두 번째 '플랫폼 혁신'이다. 정부 부처, 자치단체, 공공기관이 플랫폼을 각기 구축하고 서로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범정부·공공·민간·산업계가 함께 활용 가능한 플랫폼(Platform of Platforms)인 '디지털 트윈국토'를 완성한다면 일대일 맞춤형 행정 서비스 및 산업 활성화가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혁신'이다. 데이터·플랫폼 혁신을 토대로 공공은 데이터 기반 행정 서비스, 민간은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각자 발굴해 나간다면 국민 안전과 경제·사회적 편익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칭기즈칸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동안 정부가 법·제도, 예산 등을 마련하기 위해 성을 쌓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민간이 데이터를 활용해서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길을 과감하게 열어 줘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 핵심 기반인 '디지털 트윈국토'를 구축하고 이를 공공 및 민간에 제공한다면 신산업 확장, 분야별 특화 서비스 발굴, 신규 일자리 창출이 획기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결국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시작과 끝에 '디지털 트윈국토'가 있다.
최송욱 LX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정보본부장 ccsw4625@lx.or.kr
-
문보경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