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정부의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납품단가조정협의제' 활성화를 통해 대응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소기업계는 협의제가 유명무실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협의 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납품업체가 거래 중단 등 보복을 우려해서 신청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입 이후 10여년 동안 신청 건수는 단 한 건도 없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납품단가조정협의제를 도입한 2009년 이후 협동조합을 통해 납품단가 조정 협의를 신청한 건수는 0건이다. 이 제도는 불가피할 경우 협동조합이 수급사업자(납품업체)를 대행해 원사업자(납품받는 대기업)와 조정을 진행하는 제도다. 일부 개별업체의 조정 협상이 이뤄지지만 정작 가격 조정이 필요한 납품업체는 거래 단절 등의 우려로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10여 년 넘게 한 건의 신청도 없을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로 전락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요구하는 중기에 △모범계약서 도입 △모범기업 인센티브 제공 △납품단가 신고센터 운영 △대행협상 제도 완화 검토 등을 보완책으로 내놓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단가 인상분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는 데 근본 문제가 있다”면서 “모범기업 인센티브 등 세부 방안을 봐도 결국 대기업을 위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중기업계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가격정보, 수입 원유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가격 등 객관적 지표를 활용해 주요 원자재 가격지수가 3% 이상 오르면 납품단가를 의무적으로 조정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중기업계는 공정위가 반대 근거로 내세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시 납품업체의 기술 및 경영혁신 유인 감소에 대해서도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을 위해 '납품단가 제값 받기'가 필요하다”며 “결국 납품단가를 제대로 쳐 주지 않겠다는 것으로, 중소기업에 '제살깎기'를 요구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피해는 중소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기중앙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원자재 가격은 2020년보다 평균 51.2% 올랐으나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된 중소기업은 전체의 4.6%에 불과했다. 미반영 사유로는 '관행적인 단가 동결·인하'(73.5%)가 가장 많았다.
원자재 가격 인상은 중소기업의 이익 악화로 직결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이 10~1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또다시 급등하면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무경 의원을 비롯해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