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건드리지 마세요. 특히 창문 열지 마세요.”
연기로 자욱한 사건 현장에 들어온 베테랑 형사 시선이 창문을 여는 동료 경찰에 꽃힌다. 날카로운 어조로 사건 현장을 보존하라고 말한다. 부부가 살고 있던 집에 남편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아내의 시신만 있다. 석연찮은 죽음과 집안 가득한 연기, 어지럽혀진 거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시신에 난 상흔, 토사물, 나뒹구는 약병들, 몸 싸움을 벌인 듯 제자리를 잃은 물건은 살인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현장에 같이 있었던 유일한 사람, 남편이 아내를 죽인 것일까.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 속 이야기다. 극 중 '강진아(채정안 분)'는 아내의 죽음에 남편 '황경민(김동욱 분)'이 연관된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현장 감식 결과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강진아는 아내의 자살에 남편이 연관됐다는 것을 직감하고 동료 형사 '정종석(김성규 분)'과 사건을 파헤친다. 현장 감식과 부검 등 과학 수사를 통해 황경민을 추적하던 강진아와 정종석은 황경민의 첫 번째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현장에서 피해자에게 먹인 것으로 보이는 환각제를 발견한 정종석은 황경민의 두 번째 타깃을 예측하고 본격적인 추적을 시작한다.
현장은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과학수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건 강진아가 동료 형사에게 경고한 것처럼 현장 감식을 위한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일이다.
현장 감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단순한 사건 현장을 조사할 때는 직선형과 나선형 방법을 활용한다. 조사하는 사람이 적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순차적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조사기법이 단순하다. 격자형은 사건 현장이 복잡하고 넓은 곳에서 사용된다.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와 세로, 두 방향을 조사한다.
실제 현장 감식은 형사가 아닌 전문성을 갖춘 현장 감식 조사관이 한다.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조사관은 수사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과학수사 발달로 연쇄 살인 범죄가 초기에 차단되고 있다. 2019년 기준 강력범죄 검거율은 77.2%였다. 앞선 2015년 70.7%와 비교해 6.5%P 증가했다. 살인의 경우 2017년과 2019년에는 100%를 초과 달성했다. 과거 발생한 사건 범인까지 검거, 그 해 발생한 사건보다 검거 숫자가 많았던 셈이다.
과학수사 발전은 현장 감식 기법 혁신과 관련 있다. 현장 감식 역사는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 법정에서 피 묻은 지문을 단서로 용의자를 지목했다는 기록이 있다.
경찰 수사망을 피해서 사건 현장에 메시지를 남기는 '연쇄살인마' 황경민은 과연 강진아와 정종석 추적을 피할 수 있을까. 베테랑 형사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추적극을 다룬 '돼지의 왕'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시청할 수 있다.
박종진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