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 취소 이어 '집무실' 공방
신구 충돌에 '국민통합' 험로
전문가 "시간 흐르면 靑 불리"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간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놓고 갈등이 심화됐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겉으로 드러난 갈등 중 하나에 불과하다. 속내는 권력간 충돌이다. 새정부 출범에 협력하라는 당선인측과 5월9일까지는 문재인 정부라는 청와대 간 대결 구도다.
지지율 49%와 42%의 신구 권력간 기싸움에 대선 후 최우선 과제로 손꼽힌 국민통합도 요원해졌다.
문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군 통수권자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부처도 국정에 흔들림 없이 매진하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당선인 측이 공개적으로 요구한 사항에 대한 불쾌감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에 △공공기관장 인사 협조 △이명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예비비 국무회의 승인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오는 5월 9일 임기 종료까지 문재인 정부라는 점을 다시 한번 우회적으로 상기시킨 셈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도 국무회의에 상정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이 지난 20일 직접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다음날인 21일 문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날도 문 대통령은 “국정에는 작은 공백도 있을 수 없다. 신냉전 구도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국제 안보 환경 속에서 한반도 정세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 군이 최고의 안보 대비태세를 유지해야 할 때”라면서 “안보에 조그마한 불안 요인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 교체기에 더욱 경계심을 갖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 “국제 경제 상황도 급변하고 있다. 공급망 문제와 에너지 수급, 국제 물가 상승 등의 불안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면서 기술패권 경쟁과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새정부 국정 우선순위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두는 것을 경계했다.
윤석열 당선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현 정부 협조 없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청와대 개방은 계획대로 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달리 청와대 개방은 5월 10일 새정부 출범에 맞춰 추진하라는 뜻이다.
지난 16일 예정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단독 회동이 4시간 전에 전격 취소된 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간 실무협의도 답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갈등이 지속되는 양상이다.
정치권에선 지지율이 박빙인 점령군인 당선인 측과 이를 마뜩찮게 보는 청와대의 권력 싸움으로 해석한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헤럴드 의뢰로 지난 14~18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252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응답률 8.4%, 표본오차 ±2.0%포인트)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49.2%,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42.7%였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당선인 측과 청와대의 갈등은 기싸움이다. 한마디로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라면서 “회동 또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청와대와 문 대통령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