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에선 가장 잘 보이는 곳마다 대학재정지원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10년 이상 등록금 동결로 대학 재정은 정부만 바라보는 처지에 놓여 있다. 대학별 연구개발(R&D)과 교육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지원사업에 대학이 목매고 있다.
재정지원사업 피로도는 대학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사업별로 준비위원회가 꾸려지고 사업 평가기준을 맞추기 위한 크고 작은 컨설팅, 문서 작업이 이어진다. 평가 결과를 놓고 공정성, 전문성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미 한두 해 일이 아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교수는 “공정성 시비가 많다 보니 평가위원으로 해당 분야에 네트워크와 전문성 없는 사람을 찾으려 한다”며 “그런 평가위원이 기준에 맞춰 매긴 결과가 대학 발전에 도움이 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학에 대한 공교육 지원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학생 1인당 교육비는 2021년 기준 1만1290달러다. 국내 초등학생 1인당 교육비 1만2535달러, 중학생 1만4978달러에 비교되는 문제는 여러 번 거론됐다. 이조차 평균값이라는 것임을 감안하면 국가 재정지원사업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방대일수록 국가 공교육 지원은 더욱 낮다. 청년은 더 나은 교육 기회와 일자리를 찾아 계속 수도권 대학으로 몰리고 있다. 이는 지방대는 물론 지방 소멸 속도까지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으로 올라가는 동안 대학 경쟁력은 뒷걸음질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고등교육 경쟁력 평가에서 2011년 39위에서 2019년 55위로 떨어졌다. QS '2021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한국 대학은 13위가 최고 순위이며, 서울대가 18위까지 하락했다. 대학의 처절한 현실을 비추는 지표이면서 달리 보면 한국에 아직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 대학이란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고, 만약 대학 경쟁력이 올라간다면 국가 경제력을 한 단계 새롭게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학정책은 대학 재정지원 확대 수준의 논의로 그쳐서는 안 된다. 고등교육을 위한 국가의 재정지원 확대는 급한 불을 끄는 정도이다. 필요하다면 고등교육 체제 혁신 같은 과감한 조치도 검토해야 한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후보 시절 교육부를 폐지하고 대학을 총리실 산하에 두는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차기 정부에선 대학 정책 전반을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낡은 대학 설립, 운영 규제는 가장 먼저 손봐야 할 부분이다. 학생 수 감소에 따른 학생 정원 감축과 한계대학 퇴출 방안도 시급해졌다.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인재교육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결국 청년에게 교육을 통해 희망을 줄 수 있는 정부만이 성공할 수 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