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이주용 KCC정보통신·시스원 회장 “변화의 시대 리더십은 '도전'과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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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나 기부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곳에 돈을 쓸 기회를 얻게 돼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주용 KCC정보통신·시스원 회장은 지난 연말 서울대에 100억원을 기부하며 600억원 사회환원 약속을 지켰다. 정보기술(IT) 사업으로 돈을 벌었으니 우리나라 소프트웨어(SW) 산업에 기여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지 4년 만이다.

'IBM의 첫 한국인' '국내 최초 컴퓨터 도입' '국내 최초 IT서비스 기업 창업' '1세대 SW 창업자' 등 이 회장에 대한 수식어는 많다. 하지만 정보기술(IT) 분야 입문 이후 6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SW 산업을 생각하는 이 회장의 마음은 한결같다.

SW 분야에서 앞서가는 사람이 미래 사회의 주역이며, 이는 국가 간 경쟁에서도 변함없는 진리라는 게 이 회장 소신이다. SW 인재양성을 지원하고 운당학술상을 제정한 것도 이같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이 회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우리 SW산업에 대한 생각,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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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김원배 ICT융합부장

-서울대에 100억원을 기부하면서 총 600억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기부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운 좋게 3차 산업혁명인 정보화 혁명 시기에 컴퓨터를 처음 접하게 됐다. IT 사업을 통해 큰 재산을 모으게 됐으니 이의 절반이라도 평소 아쉬웠던 한국 SW산업 발전을 위해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2017년 창립 50주년 행사 무렵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가 계속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SW 발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그동안 컴퓨터, 휴대폰, 반도체 등 하드웨어(HW) 분야에서는 눈부신 발전을 보였지만 SW 분야에서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떨어진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4년 전 가족에게 생전 모은 재산 중 금융자산의 절반인 6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먼저 고향인 울산시 종하이노베이션센터 재건축 사업에 330억원을 기부했고, 이어 IT 인재 양성을 위해 미래와 소프트웨어 재단과 종하장학회에 170여억원을 출연했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12월 10일 서울대 문화관 재건축 사업에 100억원을 기부 약정하면서 600억원 사회환원 약속을 지켰다.

-돈은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실천하신 것 같다. 유년 시절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던 것은 아닌가.

▲맞다. 나의 이런 결정 뒤엔 선친(故 이종하 선생)의 가르침이 컸다. 울산에서 '천석꾼'으로 불렸던 선친께서는 생전에 6.25 전쟁 고아를 위한 강남초등학교 설립과 장학금 지원에 앞장섰다. 1977년 울산 남구에 '종하체육관'을 지어 울산시에 기부했다.

나는 비록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소 근검절약을 강조한 아버지 때문에 늘 헌 옷만 입고 다녀 어릴 적 별명이 '고물'이었다.

아버지는 평소 '돈 버는 것보다 돈 쓰는 게 더 어렵다'는 신조를 갖고 계셨다. 나는 어렸을 때 '돈을 벌기가 어렵지 어떻게 쓰기가 어렵나' 하고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학생 때 아버지께서 사주신 군용점퍼가 어찌나 컸던지 성인이 돼 미국 유학을 가서도 입었다. 한 푼 두 푼 아끼고 모아서 기부하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나도 배워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잘난 게 있어서 기부를 한 게 아니다.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쓸 기회가 생겨서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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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운당학술상을 제정해 처음 시상했다. 제정 취지는 무엇인가.

▲SW 인재양성은 과거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필요한 분야다. 미래와 소프트웨어 재단과 종하장학회에 출연한 170억원은 코드클럽코리아 등을 통해 소외계층 어린이 대상으로 무료 코딩교육 프로그램 제공에 사용된다.

이뿐만 아니라 '메타버스로 미래 직업 상상해요'와 같은 꿈 찾기 캠프, 각종 공모전 등을 통해 미래 SW 인재양성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에 '정보문화학 기금교수'를 위한 학교발전기금에도 10억원을 기부했다. 앞으로 미래와 소프트웨어 재단을 더욱 키워 국내외 SW산업의 건전한 육성과 발전을 도모할 계획이다. 우수한 선진 기술 발굴과 SW 인재양성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운당학술상은 이 같은 SW 인재양성의 일환이다. 미래와 소프트웨어 주최, 한국정보처리학회 주관으로 정보통신기술(ICT) 학문과 기술 발전에 매진하는 인재를 발굴, 시상한다. 총 시상금 2500만원 상당으로 매년 시행하기로 했다.

-운당학술상 시상 내역과 첫 시상식 수상자를 소개해달라.

▲지난해 말 학술대상 1명과 논문대상 2명, 학생논문대상 5명을 선정해 시상했다. 첫 학술대상은 최양희 한림대 총장이 받았다. 최 총장은 서울대 명예교수로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역임했다.

장관 재직 당시 소프트웨어중심대학을 기획·설계해 대학의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고 교육과정의 내실화가 이루어지는데 기여했다. 그 결과 41개 대학에서 연간 5000여명의 고급 SW 인력이 배출돼 우리나라 ICT 산업 발전을 이끌고 있다.

논문대상은 김승욱 서강대 교수와 이수원 숭실대 교수에 돌아갔다. 김승욱 교수는 게임이론을 네트워크 운영에 적응하는 방법을 연구해오면서 10년간 총 10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수원 교수는 인공지능(AI), 머신러닝(ML), 데이터사이언스, 텍스트 마이닝 등 분야에서 30년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17건의 국제 특허와 93건의 국내 특허를 출원했다.

학생논문대상 부문에서는 김채현(숙명여대), 남기빈(서울대), 라경진(순천향대), 이상의(경기대), 장경배(한성대) 학생이 우수한 논문을 발표해 수상했다.

-한국인 최초로 IBM에 입사했다. 입사 계기와 IBM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계기는 무엇인가.

▲1955년 서울대 2학년 재학 중 운이 좋게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고학을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컴퓨터 오퍼레이터로 일을 하게 됐고 이 인연으로 1960년 미국 IBM에 최초의 한국인 프로그래머로 입사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

1963년 8년 만에 귀국해 IBM대표사무소를 한국에 열면서 한국의 산업화에 미력이나마 일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1967년 한국 최초의 컴퓨터를 도입한 한국전자계산소(지금의 KCC정보통신의 모태)가 설립될 때 IBM을 퇴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모험을 하게 됐다.

만약 고액의 연봉만 생각했더라면 IBM에 그냥 남았겠지만 그때는 정보화를 통한 한국산업 근대화에 앞장서야겠다는 일념이 강했다. 아직도 당시의 선택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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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IT 산업에 몸담아왔다. 어려웠던 일이나 보람됐던 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1967년 한국 1호 IT서비스 회사인 한국전자계산소(현 KCC정보통신)를 설립했다. 주민등록 전산화, 국민투표 개표 전산화, 철도 승차권 온라인 예·발매 전산화, 국방업무 전산화 등 굵직한 사업이 우리의 손을 거쳐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선박설계 SW를 국산화해 우리나라 조선업이 세계 1등이 되는 데 기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르웨이의 조선 SW 회사인 오토데프의 조선설계 SW '오토콘'을 현대, 대우, 삼성중공업이 별도로 계약하는 대신 한국선박연구소가 대표로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통합 계약하도록 국내 조선업계와 회의를 주재해 협의를 성사시켰다.

개별 구매했다면 300만달러가 들었을 비용을 120만달러로 줄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조선업계로서는 엄청난 비용을 절감하면서 선박 건조에 필수적인 SW 도구를 갖추게 됐다.

이후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이 오토콘을 기반으로 설계 SW를 국산화해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 1등 조선강국이 된 걸 보면 지금도 매우 흐뭇하다.

-우리나라 IT·SW 산업 발전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천연광물 등 자원이 거의 없는 자원빈국이지만 높은 고등교육을 받은 인적자원이 가장 큰 자산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5세대(5G) 이동통신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의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SW 산업을 더욱 육성한다면 언젠가는 세계를 주름잡는 K-팝에 버금가는 'K-소프트웨어'로 SW 분야 한류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신년 덕담이나 후배 IT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게 1993년이니 벌써 28년이 지났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KCC정보통신과 시스원을 각각 잘 운영하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2017년 허리협착수술을 받은 이후 건강이 악화됐다. 이후 재활운동을 하면서 종하장학회와 미래와 소프트웨어 재단 관계 일에만 관여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60여년을 뒤돌아보면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에 급급하던 1960년대 IT 불모지인 한국에 컴퓨터를 도입하겠다는 생각에 주변 사람 모두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컴퓨터를 통해 한국의 근대화를 당길 수 있다는 신념으로 도전해 왔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후배들이 갖춰야 할 리더십으로 변함없이 '도전'과 '최선'이란 단어를 제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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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용 KCC정보통신·시스원 회장은

1935년 경상남도 울산 출생으로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55년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부에 입학했다. 1960년에 미국 IBM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생산성본부 전자계산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1967년 국내 최초 컴퓨터인 후지쯔 FACOM222를 들여왔다. 1971년 생산성본부로부터 독립해 한국전자계산(현 KCC정보통신)을 설립했다. 한국을 IT 선진국으로 이끈 1세대 SW창업자로 평가받는다. 1993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기부 등을 통해 SW산업 발전과 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정리=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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