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MZ세대 지지 얻으려면 나무위키를 읽어라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던 2019년 1월,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느닷없이 나무위키가 거론됐다. 당시 청문회에서는 조 후보자가 지난 19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 '공명선거 특보'를 지냈다는 의혹이 제기돼 공방이 오고 갔는데, 그 이력이 적힌 나무위키 문서가 갑자기 삭제된 걸 두고 야당에서 '흔적 지우기'라며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은폐 의혹은 조 후보자가 “허위사실을 그대로 두면 안 되기에 사위 도움을 받아 지웠다”고 해명하며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서브컬처로 여겨지던 나무위키가 현실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기념비적 사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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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나무위키 파급력을 간파하고 발 빠르게 대응한 걸 보면 조해주 위원은 나름 신식 사고를 갖춘 인물이었던 것 같다. 비록 나무위키에 기재된 내용이 공신력을 얻지는 못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기존 언론 매체를 너끈히 능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무위키 접속자 수는 우리나라 8위(2021년 8월 기준, 시밀러웹), 세계적으로도 300위 안에 든다. 국내에서는 이미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포털사이트에서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해당 나무위키 문서가 가장 상단에 뜨는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최대 위키 사전인 나무위키 기원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이다. 2007년 건담 팬 커뮤니티 사이트인 '엔젤하이로'가 엔하위키를 운영하며 그 역사가 시작됐다. 엔하위키가 여타 사전과 대비되는 특징은 애니메이션·인터넷 드립·가십 등을 주로 다뤘다는 것인데, 우리 일상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기존 백과사전이 다뤄주지 않는 지식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젊은 층 인기를 끌었다. 엔하위키는 이후 리그베다위키로 명칭을 바꾸며 정치·경제·역사·학술 등 기존 백과사전이 다루던 영역까지 포함하게 됐고, 2015년 다시 한번 탈바꿈해 오늘날의 나무위키로 자리매김했다.

나무위키 특징은 '각 잡고' 써야 하는 기존 위키백과와 달리 친구들과 함께 신변잡기를 정리하듯 사전을 완성해 나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브레이브걸스 '롤린'이 어떻게 역주행하게 됐는지, 오징어 게임 속 주인공들은 어떤 캐릭터인지와 같은 정보도 나무위키에서는 중요한 지식이 된다. 나무위키 세상에서 쓸모없는 지식은 없다.

나무위키는 정치도 같은 방식으로 소비한다. 예를 들면 정치인과 관련한 별명,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정리돼 아카이빙 되는 식이다. 권위적이고 엄중·근엄·진지한 기성 언론은 다루지 않는 자질구레한 지식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나무위키는 MZ세대 감성과 통한다.

불현듯 나무위키의 효용을 떠올리게 된 건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때문이다. 윤석열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지난 18일 라디오에 출연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2030세대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묻는 진행자 질문에 “2030세대는 정치인의 이전 일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가까운 뉴스만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대답해 논란을 일으켰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위키에는 주 의원의 발언이 '환생경제' 출연, 군 기밀 유출, 말 바꾸기 등 과거 논란과 함께 나란히 등재됐다. 2030세대는 이전 일을 잘 기억하기 위해 나무위키에 이렇게 박제해 둔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이렇게 자신의 흑역사마저 전시되는 공간이지만 정치인에게 나무위키를 권하고 싶다. 나무위키에는 문서 작성에 참여하는 수많은 2030세대의 비판과 관심, 그리고 드립(해학)이 날 것 그대로 기록돼 있는 까닭에서다. MZ세대에 호감을 사려면 우선 그들의 인식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정확한 진단 없이는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다.

2030세대에도 주호영 의원의 나무위키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전 일을 잘 살펴봐야 주호영이라는 정치인과, 더 나아가 그를 선대위원장에 임명한 윤석열 후보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leedongsoo@policre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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