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에 AI대학 설립 '이화 비전 2030+' 추진
기술 넘어 인문·사회·예체능 융합 교육 특화
AI 알고리즘 개선 '불평등 없는 사회' 지향
구성원 협력 '대학 연구생태계 복원' 박차
김은미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은 올해 가장 중요한 성과로 '이화 비전 2030+'을 꼽았다. 올 초 취임한 김 총장은 창립 135주년 기념식에서 이 같은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김 총장은 '지속가능 사회를 선도하는 창의혁신 플랫폼' 구축을 통해 2030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화 비전 2030+는 국내 최초로 학부에 인공지능(AI)대학을 설립하고, 연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프론티어 10-10 사업' 등 주요 추진 과제를 담았다. 선도·유망 분야 발굴 지원을 위한 프론티어 10-10 사업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도연구분야 10개, 미래형 도전연구분야 10개를 선정해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이화 R&D 총괄기획단을 신설한다. 신촌캠퍼스와 목동병원, 서울병원을 묶는 이화 첨단 융복합 '메디·헬스케어' 클러스터도 조성한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며 겪는 다양한 고민과 궁금증이 해결될 수 있도록 빅데이터 및 AI 기반 통합 학생지원 시스템(E-벗)을 구축하고 데이터 분석 기반 모듈형 진로·취업·창업 교육 시스템도 도입할 예정이다.
내년 신설되는 AI융합학부 인공지능전공을 시작으로 2023학년도 신규 첨단분야 학과 신설을 위한 TF를 구성해 AI대학 신설을 준비한다. 40명 정원의 특수대학원으로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도 만들어진다.
김 총장은 AI 연구와 교육에서 이화여대 역할을 강조했다. “기술적 융합에만 국한된 AI가 아닌 사회적 규범, 문제, 책무성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성숙한 AI를 구현하기 위해 연구하고 그에 최적화된 인재를 양성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대담=김원석 정치정책부장
-2월 26일 취임, 5월 31일 '이화 비전 2030+' 발표까지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
▲취임하고 창립 135주년 기념일에 맞춰 발전계획을 발표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구성원을 설득하고 이사회 승인도 받아야 했다.
보통은 비전 선포 작업을 할 때 자문하는 교수단과 실무를 하는 교수단이 별도로 운영된다. 그래서 비전 발표 이후에 실행과 운영을 맡은 대학 처장단이 예산 등의 문제로 비전을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를 과거 학교 보직을 맡으면서 여러 번 경험했다. 이번에는 그 팀이 하나로 같이 움직였다. 함께 일하면서 '이것은 실현 불가능하다' '이것은 빠른 실행이 가능하다'라는 의견을 바로 들을 수 있었다. 비전 작업과 실무적 검토가 같이 이뤄진 것이다.
대학 내 여러 보직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총장 임기 4년이 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총장 임기 첫해에 구상하고, 2차년도에 계획을 발표하고, 3차년도에 실행하면 변화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비전 발표 이후 여러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일반대학원 충원율이 오랜만에 90%를 넘어 93.3%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작년보다 10% 이상 늘었다. 예산에서 장학금을 주거나 할 여유가 없었는데도 학교가 연구중심대학 비전을 제시하고 인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계속 이야기했다. 그것을 학장님들이 공감하고 적극 추진해주신 덕분이다.
코로나19로 대면 접촉이 힘들어지면서 기부금 모금도 상당히 어려웠는데, 9월 말 기준으로 2019년 대비 140% 이상 기부금을 달성했다. 작년에 크게 위축됐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다. 전체 경제가 어려운데도 희망 신호로 보고 있다. 비전 발표 등을 통해 동창을 비롯한 후원자들이 '이화여대에 기부하면 의미 있게 쓰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참여해주신 결과로 보고 있다.
-AI대학 설립 계획도 밝혔다.
▲우선 내년에 AI융합학부 AI 학부 전공이 신설된다. 수시 10명, 정시 30명 규모로 2022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한다.
공학 기반의 AI 코어 교육뿐 아니라 이화여대 강점인 인문·사회·예체능 분야를 접목한 융복합 교육으로 특성화할 계획이다. 입학정원 20%를 인문계 학생으로 선발해 계열 간 장벽을 허물 것이다.
AI융합학부 인공지능전공 신설에 이어 향후 1~2년 내 첨단분야 학과 추가 신설을 통해 AI대학도 설립할 예정이다. 인공지능전공을 기존 단과대학에 넣어놓으면 나중에 바꾸기가 어렵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설립은 대학원 정원에서 편제 조정으로 가능하다.
앞으로 만들어질 대학원에선 프론티어 10-10 사업으로 AI 분야 세계적 석학이나 선도적 교수를 모시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이화여대 AI 교육은 어떤 차별점이 있는가.
▲과거에는 여학생이나 소외계층 청소년들이 디지털 격차로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진출이 저조했다. UN이나 국제협력 분야에 가면 디지털 분야에 여성 인력이 적다는데 문제의식을 공감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AI리터러시(AI역량) 격차가 중요하다. 여성 젠더 불평등 해결에 노력해온 이화여대가 앞장서야 할 부분이 여성과 여학생의 AI 역량 강화다.
AI 연구와 교육은 크게 세 가지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 AI 코어 기술 분야가 첫 번째고, AI 기술을 여러 학문 분야와 융합하고 응용하는 분야가 두 번째다. 세 번째가 AI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와 규범, 규제, 책무성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다.이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AI 관련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크게 고려하지 못하는 분야다. 이화여대는 세 번째가 교육과 연구의 중요한 기둥 중 하나다.
'이루다 챗봇' 사건을 기억하실 것이다. AI 알고리즘을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의 젠더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만들어진 일이다. AI가 데이터를 학습할 때 사회에 불평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AI 알고리즘 문제 개선에 이화여대가 기여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 2021 글로벌 젠더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젠더 격차는 세계 156개국 중 102위다. 젠더 격차가 매우 크다. 현존해 운영 중인 AI 알고리즘은 불평등의 재생산 가능성이 높다. 미래지향적이고 남녀 모두 행복하고 불평등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AI 코어 기술이 필요하다.
일부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문사회·예체능 분야가 큰 대학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학문 분야를 보유하고 있어 좀 더 인간적 토양에서 보다 미래지향적 기술을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도 신설한다.
▲이미 일반대학원에는 빅데이터 관련 전공이 설립됐다. 많은 학생들이 몰리는 인기 전공이다. 대부분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에서 수요가 많다. 학부를 다니다 사회에 진입한 학생들이 일반대학원에서 전일제 수업을 받기는 힘들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은 특수대학원으로 만들어진다. 특수대학원은 주로 야간과 주말에 수업이 이뤄지는데, 온라인 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학교에서 컴퓨터공학, 통계학, 경영대 교수님들이 주축이 돼 대학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데이터사이언스에서도 응용을 강화하려고 한다. 그동안 통계학 분야에서 많은 응용이 이뤄졌는데, 경영이나 비즈니스 등 다양한 활용에 중점을 둔 교육이다.
-대면 수업을 재개하는 대학들이 나오고 있다.
▲당초 가을학기부터 대면 수업을 하려고 했으나 8월부터 확진자가 많이 나오면서 4단계 사회적 거리두기가 엄중해졌다. 현재 학교 구성원을 위해 중간고사 기간인 10월 말까지는 비대면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감염병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내가 맡고 있고, 대외부총장이 부단장이 돼 매주 금요일마다 회의한다. 정부, 타대학 상황, 구성원 의견 등을 다양하게 확인하고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 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대학 교육이 온라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플립러닝(온라인 선행학습방식)이나 미네르바대학도 매우 인기를 끌고 있다. 대면으로 이뤄지는 지식 전달형 교육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코로나19는 이것을 앞당겼다.
이화여대는 온라인 교육으로 가는 준비를 위해 2015년부터 강의실 등 학교 하드웨어를 꾸준히 교체해 왔다. 기존 강의실을 첨단강의실로 바꾸고 2019년과 2020년에는 이런 작업에 보다 박차를 가했다.
'위드 코로나'가 되더라도 완전 오프라인, 옛날식 수업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또 100% 온라인으로만 가지도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블렌딩을 할 것이고, 어떤 전공이 온라인에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학문 특성별로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함께 연구하고 있다.
-메타버스 교육환경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화여대와 같이 큰 규모 대학에는 다양한 학문 분야가 있고 한 번에 쉽게 가기는 어렵다. 연구가 필요하다. 일단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되려면 정보기술(IT) 전반에 투자가 강화돼야 한다. 학교에 IT매핑을 하라고 했다. 우리가 과거보다 IT 수요가 훨씬 늘어났고, 네트워크 용량이나 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도 관련 부서에서 마스터플랜을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단기적인 것은 가능하면 올해 안에 투자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학교 구성원이나 학부모, 동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리더나 기관의 장이든 같을 것이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뭘 원하는지를 잘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선제를 통해 총장이 됐다. 그 과정에서 교수, 교직원, 동문, 학생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학교가 변화했고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열심히 들었고 기록했다. 그렇게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말한 것을 들어 나온 것이 5월 비전 선포식이다.
구성원들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내 아이디어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원하는 바가 뭔지를 듣고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작은 성과라도 공유하면서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
현재 연구중심대학으로 대학 연구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은 이화의 연구역량이 다시 강해져야 한다. 10년 뒤에도 가장 잘한 일로 꼽고 싶다.
이화여대가 135년이나 돼 국내에서는 이른바 고령 대학이지만 세계 대학과 비교하면 오래된 대학이 아니다. 활기찬 에너지 넘치는 대학으로 만들고 싶다.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은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은 1981년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10년간 일하고, 1997년부터 현재까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이화여대 국제개발협력연구원장, 이화여대 글로벌소녀·여성건강연구원장, 이화여대 대학원장 등 교내 주요 보직을 역임하며 2021년 이화여대 제17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국제개발협력학회장과 한국대학국제교류협회장을 지냈으며,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UN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대한 보고서 집필진으로 참여하는 등 UN과 국제협력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게이츠재단 연구 과제로 소녀 건강과 소녀 교육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현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유일한 민간위원이자 선출직 부위원장으로서 한국 내 교육·과학·문화·정보 커뮤니케이션 분야 국제협력 촉진을 위한 유네스코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정리=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사진=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