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번 돈은 어디 있을까. 내 집 장롱 안이 아니다. 은행, 보험사, 투자사 등 금융기관에 있다. 계좌 개설, 카드 발급, 보험 가입 등 우리 삶은 금융기관과 관계를 맺으며 시작하고 금융계좌를 닫으면서 끝난다.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일하게 하라. 돈은 버는 것이 아니라 불리는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명언이 쏟아지는 그곳은 바로 금융이다.
금융은 정보통신기술(ICT)·과학기술 발전으로 혁신을 거듭했다. 전산화를 통해 금융 업무가 투명·신속해졌고, 신용카드 대중화로 시장을 키웠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Automated Teller Machine) 도입으로 예금·이체·조회 등 업무가 간소화됐고, 인터넷(모바일 포함) 뱅킹으로 더욱 편리해졌다. 점포가 거의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하고 각종 금융기관에서 하는, 내 정보 관리와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는 마이데이터 사업이 생겼다. 암호화폐도 금융의 일부가 되려 한다.
금융은 지금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은행의 인터넷뱅킹 등록고객은 1억7037만명(전년 대비 7% 증가)이고, 그 가운데 모바일뱅킹 등록고객은 무려 1억3373만명(10.6% 증가)이다. AI를 이용해 고객상담 등 단순·반복 업무 대체, 문서 작성 자동화, 채용심사와 인력배치, 대출·보험심사를 하고 있다. 자산관리 부서는 운용전략 수립, 운용펀드 재조정, 주식매매 등 업무에 AI를 활용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8일 AI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정부 AI 가이드라인이 대부분 그렇듯이 추상적이다. 요약하면 '잘못되면 알지? 알아서 잘해!'라는 뜻이다.
AI는 금융에 기회일까. 그렇다. 다양한 상품 설계에 이용할 수 있다. 불완전판매 방지 플랫폼 구축, 자금세탁 방지 체계 고도화, 저비용·고효율 업무체계 혁신, 등급조정시스템 등 금융거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인다.
위기는 무엇일까. AI는 복잡하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 수 있는 정도로 작은 사고도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 실물경제와의 괴리가 커질수록 위험도 증대한다. 데이터 활용에 따라 보안위험, 개인정보 침해가 우려된다. 대출·보험·신용평가에서 같은 조건임에도 여성·장애인·인종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 금융기관 실적을 높이기 위해 겉으론 고객에게 이익이 되지만 실질은 금융기관 매출에만 기여하는 상품을 설계할 수 있다. 금융상품 설명에서도 형식적으론 모든 것을 알려주지만 고객의 잘못된 판단·결정을 유도하는 '고도화한 불완전판매'가 가능하다. 임직원 일자리도 줄 수 있다.
대책은 없을까. 금융기관 AI 알고리즘의 투명성,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자고 한다. 좋은 말이지만 알맹이가 없다. AI 알고리즘은 핵심 경쟁 수단, 영업비밀이어서 공개할 정도로 투명하긴 어렵다. 물론 고객과의 계약 위반, 금융사고가 발생했는데도 AI 알고리즘이 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AI를 운용한 금융기관이 금융관계법령·계약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 금융기관의 고객보호정책 강화, 투명성보고서 개선 등 자율규제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AI 알고리즘 작동원리는 피해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영업비밀을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설명해 줘야 한다.
끊임없는 보안 개선도 필요하다. 고객신용도 등 합리적 조건에 따른 차별을 할 수 있지만 성별, 장애인, 인종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도록 AI 알고리즘을 짜야 한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판단기준을 엄격히 해야 한다. 마이데이터 등 고객지원 사업을 강화, 금융기관과 고객 간 정보 격차를 줄여야 한다. AI로 인한 인력 재배치, 일자리 감소는 사회안전망 및 금융 악화의 악순환을 가져오기 때문에 교육·재취업 프로그램을 통해 위험을 낮춰야 한다. 금융기관이 AI를 통해 똑똑해지는 만큼 금융규제 당국도 AI를 활용한 불법 탐지 등 효율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라는 변명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