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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화학물질 프탈레이트가 자폐, 우울증 등 뇌질환을 악화시키는 원인 물질이라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화학첨가물로, 대표 환경호르몬(내분비교란물질) 가운데 하나다. 인체 유해성이 인정돼 사용이 제한되고 있지만 워낙 종류가 많아 현실적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김붕년 교수 연구팀은 총 547쌍의 모자 코호트(동일집단)를 10년간 장기 추적해 태아기, 아동기 동안 프탈레이트 노출과 자폐 연관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임신 중 프탈레이트 노출은 4세 아동의 자폐 특성과 연관성을 보였고, 4세 및 8세의 노출은 8세 아동의 자폐 특성으로 이어졌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진은 임신 중기(평균 20주)의 산모와 4세, 6세, 8세 아동의 소변을 이용해 5가지 프탈레이트 대사물 수치를 측정했다. 각 시점에서의 자폐 행동 특성은 사회적 의사소통 평가척도(SCQ)를 통해 평가했다. SCQ 점수가 높을수록 많은 자폐 특성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분석 결과, 임신 중 프탈레이트 대사물의 수치가 증가하면 4세 아이의 SCQ 점수가 7.4∼8.5% 증가했고 4세와 8세의 프탈레이트 대사물의 수치 증가는 8세의 SCQ 점수를 9.6~ 9.9% 높였다. 남아에서 프탈레이트 노출과 SCQ 점수 사이 연관성이 뚜렷했다.

연구팀은 앞서 2014년에도 프탈레이트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 간 상관 관계를 조명한 바 있다. 연구진은 ADHD 아동 180명 (비교군)과 일반아동 438명(대조군)을 대상으로 소변검사를 한 뒤 프탈레이트 농도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비교군의 프탈레이트 대사 물질 농도가 대조군에 비해 더 많이 검출됐다. 또 프탈레이트 검출 농도가 10배 높으면 아이의 행동장애수치(DBDS)는 7.5배 높게 나타났다.

경상국립대 의과대 김현준 교수, 강재순 박사 연구팀은 프탈레이트와 우울증 간 상관 관계를 분석했다.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수준의 프탈레이트가 함유된 먹이를 섭식한 생쥐에서 우울증 행동과 우울증 관련 인자가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프탈레이트가 사춘기 남성의 생식 기능 감소, 성장 저해, 비만, 심장질환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프탈레이트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쌓이고 있지만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프탈레이트는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디뷰틸프탈레이트(DBP), 뷰틸벤질프탈레이트(BBP),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등 종류가 다양하다.

다수 프탈레이트가 생산, 수입이 금지되거나 아이 입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장난감이나 아동용 제품에 사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식품 용기에 프탈레이트 사용을 금지했고 2007년부터 플라스틱 완구나 어린이용 제품에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프탈레이트는 화장품, 식품 포장, 의료기기, 장난감에서 흔하게 검출되고 미세플라스틱이나 미세먼지 등에도 다량 함유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과거 국내 조사에선 욕실화, 모서리 커버 등 생활용품은 물론 홍삼 제품 상당수에서 검출돼 충격을 안겼다.

이에 알게 모르게 프탈레이트는 인체에 꾸준히 유입되고 있을 가능성이 짙다.

물질 평가를 위한 유럽연합 시스템(EUSUS)은 성인은 몸무게 1㎏에 2~67㎍, 어린이는 20~312㎍의 DEHP에 매일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예측했다.

프탈레이트가 체내로 들어오는 경로는 다양하다. 호흡은 물론 피부를 통해서도 유입되지만 가장 주된 경로는 섭식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프탈레이트의 반감기가 짧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반감기가 12시간 내외다. 플라스틱 용품 사용 및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게 유일한 대응책이다. 플라스틱을 장기간 사용하지 않으면 체내 농도를 상당량 줄일 수 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