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銀, 내달 25일까지 체계 구축 주문
"금융사고 시 면책 보장 근거 없어" 밝혀
실명계좌 계약 거래소 "당장 구축 어려워"
가상자산 입·출금 중단 땐 이용자 피해 우려
![Photo Image](https://img.etnews.com/photonews/2108/1446437_20210824164930_589_0001.jpg)
NH농협은행과 빗썸·코인원 등 NH농협에서 실명확인계좌를 발급받은 가상자산거래소 간 입장 괴리가 커지고 있다. NH농협은행이 '트래블 룰' 체계를 구축하기 전까지 거래소들에 가상자산 계좌 입·출금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면서 오는 9월 24일까지 신고수리를 진행하려던 거래소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NH농협은행과 빗썸 등은 이번 주 트래블 룰 체계 구축 시기 등을 조율하기 위한 협상에 돌입한다.
트래블 룰은 거래소가 가상자산을 이전할 때 전송자와 수신자 정보를 파악할 것을 요구하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규정이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국내 트래블 룰 적용 시기를 특금법 시행 1년이 경과한 내년 3월 25일부터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NH농협은행은 가상자산거래소들이 실질적으로 트래블 룰 체계를 갖춰야 하는 시점은 이보다 6개월 빠른 올해 9월 25일이라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이 거래소에 대한 검사·감독을 1년 간 유예한 것이지, 9월 이후 6개월 동안 테러자금 유입 등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은행의 면책을 보장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근 빗썸과 코인원에 가상자산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NH농협의 경우 미국 뉴욕 등에 지점을 두고 있어 '세컨더리 보이콧' 조치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이 제재하는 국가와 거래하는 제 3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도 제재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이를 위반한 금융기관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금융망 접근 차단 등의 제재를 받는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개정 특금법 상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유예기간은 6개월이 맞지만, 가상자산거래소들의 트래블 룰 준수 의무를 1년 유예했다는 것은 어디에도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가상자산 입·출금 제한 조치도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상호 협의를 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문제는 농협이 입장을 강행할 경우 실명계좌 계약을 맺은 거래소는 9월 25일 신고수리 마감일까지 트래블 룰 시스템 구축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트래블 룰 시스템은 각 사업자 공조가 필요해 개별 기업이 서두른다고 구축 시점을 앞당기기 어렵다.
가상자산거래소 사업자들은 당장 실익을 보기 어려운 가상자산 이동 제한 조치가 이뤄질 경우 이용자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코인이 특정 가상자산거래소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경우 시세가 왜곡되는 '가두리 펌핑'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장 1위 사업자 업비트 독점 체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상존한다.
케이뱅크에서 실명확인계좌를 발급받는 업비트는 지난 20일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중 최초로 금융 당국에 사업자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업비트는 자체적으로 트래블 룰 대응에 나서기 위해 4개 거래소 공동 대응 합작법인(JV)에서도 탈퇴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하필 신고수리 마감을 코앞에 둔 시점에 NH농협은행이 갑자기 트래블 룰 준수를 강조하고 나온 것을 순수한 의도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제안을 받지 않으면 실명확인계좌를 내주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