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는 낡은 제도"...혁단협, 美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제안

국내 벤처·스타트업 환경에 맞은 대응책 별도 연구

주 52시간 근로제가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된 지 약 1개월 지나면서 벤처·스타트업계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도 주 52시간제 위반 혐의를 받는 데다 이들보다 열악한 초기 스타트업은 인력난 가중으로 큰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벤처·스타트업 초기 성장의 발목을 잡아 제2 벤처 붐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관련 협회·단체는 고용·임금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16개 중소 혁신형 단체가 모인 혁신벤처단체협의회(이하 혁단협)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면제근로자)', 영국의 '옵팅아웃' 등과 같은 특화된 임금제도를 국내 실정에 맞춰 검토해서 정부에 제안하기로 했다. 혁단협은 정부의 주 52시간제 시행에 앞서 개발자 등 필요 인력 수급이 어려운 만큼 1년의 유예 기간을 강력하게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중장기적으로 차선의 대응책 마련에 착수한 것이다.

혁단협은 벤처·스타트업 업계가 단기간 집중 업무처리로 고성장을 이루는 업계 특성을 고려해 미국의 노동 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면제근로자 제도에 주목하고 있다. 면제근로자 제도의 경우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임금과 직무를 고려해 임원, 행정직, 전문직에 대해 주당 근무시간 규제를 예외적으로 적용받지 않도록 해 준다. 특히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법에서는 컴퓨터직 근로자에 대해 연방법 이상의 화이트칼라 면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창의적 노동환경을 중요시하는 스타트업에 전통 제조업과 같이 노동 시간 기준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보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미국의 면제근로자뿐만 아니라 유럽의 옵팅아웃 등도 검토, 국내 환경에 적합한 제도를 제안하려 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주 48시간 옵팅아웃 제도는 근로자 개인이 자발적 선택으로 일정 기간 또는 영원히 주 48시간 이상 일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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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탄력근로제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스타트업 대부분이 소수 인원으로 직무가 각기 다른 상황인 데다 회사와 협상해서 근무시간에 대한 합의를 끌어낼 노동조합도 없어 현실적으로 적용이 쉽지 않다.

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는 “투자 유치와 서비스 론칭 등으로 밤샘 작업이 많은 상황에서 주 52시간제를 지키다 보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 “소수 인원이 빡빡하게 일하고 있는 초기 스타트업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국내 벤처·스타트업 환경에 맞은 근무방식을 검토해서 대응책을 정부에 제안할 계획”이라면서 “생태계 활성화와 근로자 권익 보호 모두 충족시킬 수 있도록 여러 단체가 머리를 맞댈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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