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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프로젝트와 가상자산거래소 간 계약서 내용은 '노예 계약'이나 마찬가지다. 가상자산거래소가 난데없이 상장폐지를 통보하더라도 사유조차 물을 수 없게 돼 있다. 법적 대응도 생각해 봤지만 최종판결까지 2~3년이 걸려서 승소해 봐야 프로젝트가 무용지물이 된 이후에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에 결국 대응 방침을 접었다.”

최근 가상자산거래소의 무더기 상장폐지 사태에 휘말린 한 프로젝트 대표의 하소연이다. 지난달부터 중대형 거래소에서도 코인이 수십 개씩 무더기로 상장폐지되고 있다. 문제는 거래소가 일방적으로 '방 빼' 통보를 하면서도 상장폐지 사유를 전혀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월세가 밀렸으면 내면 되고 고쳐야 할 문제는 고치면 된다. 그러나 내부 심사 결과 '수준 미달'이라고 하는 데에는 대응할 방도가 없다. 상장 여부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잠재력을 가늠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대형 거래소에 상장하면 충분한 검증과 실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실 검증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 거래소에서 '상장피'를 포함한 금전 대가를 받고 상장 여부를 결정함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상장 여부가 미리 유출돼 소수가 큰 이익을 챙기는 상황에서도 상장을 강행하는 프로젝트는 부지기수다. 거래소는 상장 체크리스트에 △기반 프로젝트 투명성 △원활한 거래 지원 가능성 △투자자의 공정한 참여 가능성 등으로 구성된 항목의 충족을 최소 기준으로 삼고 있다. 수십 개에 이르는 이 체크리스트를 만족시키는 프로젝트만 상장시켰다면 이와 같은 무더기 상장폐지 사태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진작 상장폐지가 되어야 하는 일부 코인이 묵묵히 버티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다. 1년 반 넘게 출금 처리가 막혀 있는 코인도 이번 무더기 상장폐지라는 태풍은 피했다. 거래소 주요 관계자와 친분만이라도 있었으면 '상폐 칼춤'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는 비아냥마저 나돈다.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 명분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기습 상장폐지는 거래소를 살리려고 기존 투자자를 희생시키는 기만행위다. 차라리 상장이 부실했음을 인정하고 상장폐지 사유를 투명하게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