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인데 누군가 희망과 의지를 되찾고 그 계기가 게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소림 캐스터는 현재 국내 유일 메이저 게임 여성 캐스터다. 1999년 시작해 지천명을 바라보는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 45종에 달하는 게임의 수많은 경기를 중계했다. 여성이 스포츠 중계에 참여하는 경우가 리포터와 인터뷰에 국한된 점을 고려하면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한 커리어다.
정 캐스터는 22년간 게임과 함께 했다. 이 과정에서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접했다. '시간 낭비다' '게임 말고 제대로 된 취미를 가져라' 등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게임 장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산업적으로 접근해 장점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피부로 와 닿는 것은 단점이 더 많은 것이 국내 현실이다.
게임의 긍정 요소를 고민하던 시기, 어느 날 한 사람이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 왔다. 정 캐스터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게임 중계 중 “저 선수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정 캐스터는 “당시 그분이 삶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내 말을 듣고 본인의 삶도 끝나지 않았을 거라고 희망을 품고 다시 꿈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게임 대회와 중계를 보면서 힘과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정 캐스터는 “22년간 나조차 몰랐던 게임의 장점,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지를 다잡게 해주는 계기가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2년 게임 캐스터 생활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가 처음 중계를 시작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여자는 게임을 모른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다. 수많은 빌드, 챔피언, 스킬, 아이템을 하나부터 열까지 외웠다. 판례를 찾아보듯 앞 경기도 들여다봤다. 해설자와 선수를 따라다니면서 게임을 배웠다. 선수급 플레이를 보고 익혀 최고 플레이가 어떤 패턴으로 나오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게임 캐스터가 익숙지 않은 직업이다 보니 오해도 많았다. 일반적으로 게임 중계는 2명 또는 3명이 진행한다. 캐스터와 해설자 역할이 나뉜다. 캐스터는 프로그램 전반을 진행하고 해설자는 심도 있게 설명한다. 해설자가 깊이 있는 내용을 설명할 수 있게 끌어내는 것이 캐스터의 역량이다. 보통은 해설자에게 공을 돌리다 보니 게임을 모른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흔들리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주위의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정 캐스터는 “게임을 통해 희망을 가지게 됐다는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 역시 희망과 위안을 받는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다독거리고, 스스로 변명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