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이젠 특허보다 영업비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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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종결된 국내 대기업 간 영업비밀 탈취 관련 분쟁에서 천문학적 합의금이 화제가 됐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기관도 앞다퉈 영업비밀 보호 강화시책을 쏟아내는 등 심상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와중에 특허 소송은 이겨도 손해 배상액이 너무 적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상황을 고려하면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개발한 기술을 특허로 관리하는 것보다 영업비밀로 보호하는 게 소송에서 효율적일까.

사안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업이 기술을 특허 출원하지 않고 영업비밀로만 보호한다면 심각한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

영업비밀로만 기술을 보호하면 기술이 공개되지 않는다. 산업 측면에서 동일 기술 개발에 중복 투자가 진행될 공산이 높아지기 때문에 심각한 자원 낭비가 우려된다.

기술 개발에 나선 후발주자는 참고할 만한 선행 기술을 파악할 수 없어서 자체 기술 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 연구 효율성과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기술을 비밀로 유지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소모될 수 있다. 기업 간 기술 탈취를 의심하는 사례가 만연하고, 영업비밀 침해 소송으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기술 사유화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고안한 제도가 특허임을 생각해 보면 특허의 존재 가치는 더욱 분명해진다.

특허 출원을 하면 기술이 사회에 공개됨으로써 공공 자산으로서 사회 전체의 총량적 기술 수준을 높여 후속 기술 개발을 용이하게 한다. 기술이 공개되기 때문에 중복 투자가 예방된다. 기술 공개 대가로 허여되는 20년의 특허권 존속 기간에는 영업비밀 보호보다 강력한 보호가 가능하다. 오늘날 눈부신 기술 진보는 특허제도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다.

코카콜라가 자신의 영업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특허 출원을 하지 않고 영업비밀로 기술을 지키려다 핵심 기술이 시장에 공개됨으로써 손해가 막대해진 수많은 기술 보호 실패 사례도 주목해야 한다.

특허 소송에 이겨도 손해배상금이 적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사실일까. 이번 국내 기업 간 특허 소송이 만약 끝까지 가서 한 기업이 패소했다면 막대한 배상금 판결이 나올 수 있었다.

특허 소송의 판결금이 적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소송 환경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간 특허분쟁의 경우 최종 판결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대기업 간 소송전이 벌어지면 정부가 나서서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 소송을 취하하도록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매출이 적은 중소기업 간 소송에선 천문학적 손해배상금이 나오기는 애초부터 어렵다.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는 것을 두고 실효성이 없다며 영업비밀 보호 강화 시책을 내놓는 것은 기업에 자칫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기술을 특허가 아닌 영업비밀로 보호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기업은 이후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영업비밀 보호는 기술 탈취와 같은 불공정경쟁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것이지 특허 보호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기업은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되 특허 보호에 적절하지 않은 경제성 있는 정보는 영업비밀로 보호해야 한다. 영업비밀과 특허가 선택 문제가 아니라 상호 보완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영업비밀 탈취 행각은 근절하되 산업 발전을 위한 공공정책이란 점에서 특허제도의 중요성을 고려해야 한다. 지나친 개입을 자제하고 특허 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와 인식 개선에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

이준석 특허법인 위더피플 대표변리사 leejs@wethepeop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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