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가전시장 재편을 노린 '비스포크 홈' 전략은 현재까지 국내에서 순항 중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혼수, 이사 등 대규모 가전 구매 시즌이 존재하는 국내 시장에서 니즈를 충족하며 급성장했다. 이번 글로벌 시장 승부수는 신속하고 적절한 제품 생산·공급이 관건이다.
비스포크 가전은 기본적으로 패널 색상이나 재질, 전반적인 제품 디자인을 다양한 형태로 제공해 소비자에 폭넓은 선택권을 주는 것을 지향한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비스포크 냉장고는 22종 기본 패널에 360가지 색상을 고를 수 있고, 식기세척기는 14종 패널을 제공한다. 대부분이 '선 주문 후 제작' 프로세스를 거친다.
다양한 재질과 색상, 디자인을 제공하다 보니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많다. 이로 인해 사전에 제품을 만들어 놓고 파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삼성전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급망관리(SCM)와 수요예측 시스템 구축에 공을 들였다. 최적의 패널, 부품 공급과 신속한 생산을 위해 2019년 비스포크 냉장고 출시 이후 꾸준히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수요예측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비스포크 가전이 국내에서 이른 시일 안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요인은 선진 SCM과 수요예측 시스템 때문”이라면서 “사전에 수요가 많은 조합을 분석해 미리 생산해 놓거나 트렌드를 분석해 수요를 끊임없이 예측하면서 신속한 제품 공급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번에 해외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이러한 생산·공급체계가 유지될지가 관건이다. 생활가전은 스마트폰이나 TV 등과 달리 지역향이 뚜렷하다. 국가마다 색상, 재질, 디자인 등 취향이 다르다 보니 한국시장에서 활용했던 수요예측은 한계가 있다. 특히 비스포크 가전은 '팀 비스포크'라는 파트너십을 통해 대창, 디케이, 두영실업, 오비오 등 중소·중견기업과 협업해 생산 중이다. 선 주문 후 생산 구조에서 해외 공급은 아무래도 신속함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초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옵션 수를 조정했다. 미국 시장에 출시한 냉장고는 3가지 형태 제품에 8가지 도어 패널을 적용한다. 색상 역시 샴페인 로즈, 네이비, 매트 블랙, 화이트 글래스 등으로 미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색상만 엄선했다. 유럽에서도 상반기 비스포크 냉장고 패널 수를 14종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국내와 비교해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줄여 생산·공급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철저한 현지 시장 조사와 약 2년 반 동안 국내 시장에서 축적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지 상황에 맞는 수요예측 시스템을 마련한 뒤 점차 패널 종류나 색상 등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국의 '팀 비스포크' 전략처럼 해외 현지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초기에는 국내에서 패널을 주도적으로 공급한 뒤 수요예측 시스템도 현지화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