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11월에는 집단면역이 거의 완전하게 형성될 것으로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집단면역 형성 시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후 정부는 2월 말부터 만 65세 미만 요양병원·요양시설 입소자와 종사자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이렇게 시작된 온 국민 백신접종 프로젝트는 천천히 접종 대상을 넓히며 비교적 순항했다. 일부 백신의 혈전 논란이 있었지만 큰 차질 없이 진행됐다.
이때만 해도 희망이 보였다. 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11월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적어도 코로나19로 인한 긴 터널의 끝이 어디쯤인지 아는 것만으로 힘이 됐다. 마스크 없이 공원을 산책하고 친척·친구·동료와 인원 수를 세지 않고 자유롭게 만나는, 그저 예전에는 '일상'이라고 일컫던 것을 되찾는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 예상보다 더딘 백신 접종 진척으로 말미암아 불안감이 제기된다. 여기저기에서 정부가 백신 수급 전략에서 실패했다고 불평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K-방역'에 도취해 정작 중요한 백신 확보에서는 실기했다는 지적이다.
마침 약을 올리기라도 하듯 백신 접종에서 앞선 해외의 다른 나라 소식이 전해진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사람들을 만나고, 심지어 대규모 모임까지 허용하는 등 우리에겐 꿈같은 일이다. 자연스레 불만이 쌓인다.
이러한 가운데 집단면역 달성이 실제로는 어렵다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장(서울대 교수)은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인구 70%가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 집단면역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치 않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토착화해서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백신 강국인 미국에서도 집단면역 달성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문가 사이에 집단면역 기준점을 넘어서는 일은 가까운 미래는커녕 영원히 달성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변이 바이러스 등장, 일부의 백신 거부감, 지역사회 또는 국제 단위로의 바이러스 전파 등 때문이다.
어쩌면 집단면역은 사전에서 밝히고 있는 정의와 상관없이 적어도 집단면역이라는 단어에 대해 일반인의 눈높이와 기대치를 놓고 볼 때 애초부터 현실화하기 어려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11월이 됐다고 해서 온 국민이 일제히 마스크를 벗고 이른바 '3밀'(밀집·밀접·밀폐)을 누리는 일은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섣부른 꿈에 매달리기보다 냉정을 되찾고 차분히 대응해야 할 때인 듯하다. 개인 차원의 방역 준칙 준수는 기본이다. 정부는 현재 최선의 수단인 백신 접종 속도를 높여야 한다. 백신을 두고 한쪽에서는 물량 부족을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접종 거부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백신 수급과 부작용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 해소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본질을 벗어난 정치 공세나 홍보는 접어야 한다.
상당수 전문가의 예측대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쉽사리 종식되지 않고 독감 같은 질병 형태로 지속될 공산이 크다. 피해 최소화가 중요하다. 통제 가능한 상황(완벽한 통제는 꿈일 수도 있지만)으로 다가설수록 코로나19로 말미암아 멀어진 일상에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호준 ICT융합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