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는 지적 장애가 심합니다. 가르치기가 어렵고, 수업에 방해가 됩니다. 학교에 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통스러운 편지를 받은 사람은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어머니다.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는 인재의 자격으로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스토리, 집중과 조화, 논리와 공감, 의미 부여를 꼽았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활력과 휴식, 현실과 상상, 외향성과 내향성, 개혁성과 보수성을 추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이 인재 되기를 포기할 것 같다.
우선 인공지능(AI) 최고 인재의 기술 덕목을 보자. 시장이 처한 문제에 대해 고민과 해결능력을 갖추고, 데이터를 다루고 AI 알고리즘을 만드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두뇌 유출이 위험한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두뇌 순환 시대다. 데이터, 소프트웨어(SW), 콘텐츠, 운용체계(OS)에 관한 국내외 정상급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업해야 한다. 통계학적 소양과 고성능 컴퓨팅 자원 활용능력도 중요하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AI 최고 인재의 정신적 덕목을 보자.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인재는 세상에 불만을 품고, 모순에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돼야 한다. 폭발적 창의력과 실행력으로 기술 기반의 아이디어를 내고 상품화해서 시대의 물줄기를 바꾸는 그런 사람이다.
무엇보다 창의력이다. 누가 들어도 그럴듯한 아이디어는 평범하고 의미가 없다. 조금만 고민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가 민간 우주여행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몇 명이나 동조했을까를 생각해 보라. 아이디어는 황당하거나 미친 짓으로 보일수록 더욱 좋다. 집단지성을 믿지 말자. 대기업의 말단 주임이 내놓은 멋진 아이디어는 수많은 회의를 거쳐 임원 단계까지 가면 사족이 붙어서 그저 그런 아이디어가 된다. 창의력을 갖춘 인재도 중요하지만 창의력이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도 중요하다.
다음은 실행력이다. 황당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행할 힘을 갖춰야 한다. 내가 가진 자원과 남이 가진 자원을 잘 배치해서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음악서비스는 휴대폰 사업자와 저작권자의 피 튀기는 싸움의 결과이자 컬래버레이션이다. 어떤 난관이라도 뚫고 나갈 힘이 있어야 한다. 여주 시립전화박물관에서 최초로 수출한 휴대폰의 녹색 회로기판을 봤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감동스럽지 않은가. 한국 휴대폰 수출의 역사를 시작한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싶다.
창의력과 실행력이 제대로 발휘됐는지는 그 결과로 시대 흐름이 달라졌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증기기관, 철도, 인터넷, 반도체, 스마트폰이 그러했다. 이제는 AI다.
AI 최고 인재가 많이 나오자면 교육 시설도 달라져야 한다. 근대화·산업화를 위해 말 잘 듣는 국민을 천편일률적인 노동력으로 양산하던 시대는 끝났다. 네모 모양의 학교, 낮은 천장, 개성 없는 교복, 사각형 아파트가 모여 있는 곳에서 인재가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를 배출한 차고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왜 수업은 1시간 단위로 나뉘는가. 왜 50분 수업에 10분 휴식일까. 왜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가.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이어지는 지친 일상에서 창의적 인재가 나올 수 있는가.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고쳐 보자.
창의적 교육 방법도 고민해 보자. SW 교육 과정을 의무화한다고 해서 창의적 AI 교육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교육은 국민에게 미래 사회에 적응하게 해 주는 부득이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을 디지털 서비스의 소비자로만 만드는 것은 안 된다. 온 국민을 기업가로 기른다는 생각으로 교육시스템을 바꿔 보자. 우리는 누가 던진 질문에 정답을 찾는 것에 익숙해 있다.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답이 없어도 좋다. 우리가 질문을 만들자. 21세기 교육 현장이 대한민국의 에디슨을 쫓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짚어볼 일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AI-지식재산 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