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업체의 가전 사업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가전이 기존 사업 성장 한계 돌파구 역할은 물론 수익성 개선에도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소형가전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지만 시장 성장 속도가 빨라 많은 업체가 관심을 보인다. 업체별 다양한 방식의 가전 사업 도전기가 이목을 끈다.
◇주방용품 업체들, 가전 시장 '속속' 진출
가전 사업 진출이 가장 활발한 건 주방용품 기업이다. 밀폐용기, 압력밥솥, 프라이팬 등 기존 주방용품 전문업체들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소형 주방가전을 선보이고 가전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가전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기업들은 누가 들어도 알만한 '대박 상품'을 하나씩 성공시킨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 요구를 간파한 혁신 '히트가전' 하나를 탄생시키고, 가전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른 제품까지 판매가 상승하는 효과를 노린다.
해피콜은 2016년 '초고속 블렌더'를 출시하고 가전 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 제품은 출시 다음해부터 '초대박'을 터뜨렸다. 해피콜이 국내에서 초고속 블렌더 시장을 일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해피콜은 국내 초고속 블렌더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1999년 창사한 해피콜은 양면팬,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기업이다. 주방 용품과 시너지를 도모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가전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해피콜은 가전 사업 간판 제품인 초고속 블렌더뿐만 아니라 인덕션, 미니 밥솥, 전기주전자, 에어프라이어 등으로 라인업을 늘리고 있다. 향후 주방가전뿐만 아니라 리빙가전까지 영역으로 확대하고 무선 청소기 등도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다. 해피콜은 이른 시간 내 전체 매출에서 가전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중장기로는 주방 생활용품과 가전 사업 등 투트랙으로 핵심 사업을 강화할 것이라는 비전이다.
김범수 해피콜 본부장은 “해피콜은 초고속블렌더 제품을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어 개발 과 품질팀 조직이 이미 갖춰져 있고 품질도 안정화 돼 있다”면서 “다른 라인업 제품의 경우 중국 주문자 상표부착생산(OEM)을 진행하지만 제조자 개발생산(ODM)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폐용기가 주력 사업인 락앤락은 '진공 쌀통'이 큰 히트를 치며 가전 업계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락앤락 진공 쌀통은 지난 6월 출시 이후 4개월 만에 10만대를 판매할만큼 크게 인기를 끌었다.
락앤락은 1978년 설립 이후 신개념 밀폐용기를 글로벌 119개 국에 출시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락앤락은 2019년 초 처음으로 미니공기청정기와 칼도마살균블록을 필두로 국내 주방 소형 가전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칫솔 살균기, 스팀에어프라이어 등 주방·생활과 관련한 위생 가전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4월 락앤락은 국내 소형 주방 가전 브랜드 '제니퍼룸'을 인수했다. 주방 소형가전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공격적 행보를 보였다. 제니퍼룸은 업계에서 미니밥솥 '마카롱 밥솥'을 10만대 이상 판매한 업체로 유명하다. 제니퍼룸 인수를 계기로 락앤락은 40여년간 주방생활 영역에서 구축해 온 노하우를 소형 가전에도 접목할 계획이다.
락앤락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소형가전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405% 대폭 증가했다”면서 “매출 비중으로도 2019년 3%에 불과했던 소형 가전 비중이 약 12%까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압력밥솥, 냄비, 프라이팬 등을 제조·판매하는 PN풍년은 'PN꾸노'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며 소형 가전사업에 뛰어들었다. 믹서기, 멀티포터 등을 시작으로 전기밥솥, 인덕션, 멀티압력쿠커, 전기주전자 등으로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 590억원 중 약 10%를 소형가전 사업으로 달성했다. PN풍년은 가전 렌털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PN풍년은 인덕션 등을 렌털로 판매하고 있다.
PN풍년 관계자는 “올해 회사는 가전 사업의 성장을 주요 사업 목표 중 하나로 수립했다”면서 “가전 분야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PC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국내 중소기업 앱코도 소형 가전 시장에 뛰어들어 눈길을 끈다. 앱코는 가전 사업 팀을 꾸리고 1~2인 가구용 공기청정기 등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소형 가전 시장…진입장벽 낮은편
이종업계가 소형가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이 시장의 빠른 변화와 성장세 때문이다.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중장기로 소형가전 수요가 지속 커질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됐다.
가격비교사이트 에누리닷컴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소형가전은 작년 대비 매출이 약 33% 늘었다. 드라이어, 고데기, 헤어케어 등 헤어가전이 100% 늘었고 웰빙 주방가전이 70% 성장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영향으로 소비자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소형가전 구매가 큰 폭으로 성장했다는 분석이다.
주로 주방용품 전문업체들이 가전 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는데, 이는 기존 브랜드 신뢰도를 토대로 주방용품과 연계 판매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형가전은 비교적 진입장벽도 낮은 편이다. 이들 업체는 대부분 중국 가전 기업과 제휴를 맺고 OEM과 ODM으로 제품을 공급 받는다. 주력 제품이 아니면 단가 문제 때문에 대부분 자체 생산을 하지 않는다. 이종업체들이 제품 개발이나 생산 설비 투자 없이 가전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이유다.
이들이 주로 소형가전에 집중하는 것은 배송 편의성도 한 몫한다. 대형가전을 판매하기 위해선 물류, 배송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필수다. 이 때문에 대형가전 시장은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 반면에 소형가전은 택배 서비스로 간편하게 배송이 가능해 많은 업체가 관심을 갖는다.
소형가전은 수익성도 높은 편이다. 주방용기나 냄비 등 보다 소형가전을 판매했을 때 달성할수 있는 수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업계가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소형가전은 일정 기간 유행을 타고 해당 제품 판매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에어프라이어, 초고속 블렌더, 식품건조기, 휴대용 안마기 등이 일례다. 앞으로도 많은 업체가 소비자 관심이 집중되는 아이디어 가전, 혁신 가전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소형 가전 사업을 확대할 전망이다.
가전제품은 사후관리(AS)도 중요한 요소다. 본격 가전 시장에 진출한 대부분 업체는 자체 AS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일부 업체는 중국 업체와 판매 계약을 맺은 총판 업체와 연계해 AS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종업체들이 단순 유행을 쫓는 신사업 확대 보다는 중장기 관점에서 브랜드 신뢰도를 지킬 수 있는 신중한 사업 전략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현주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존 주력 산업 부분이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에 기업들은 사업을 확장하고 몸집을 불리고 싶어 신사업에 도전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중장기로 브랜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 유행에 편승하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