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산업 '디지털 이식'…IT 전문경영인 모시기

"디지털 전환, 선택 아닌 필수" 인식 확산
식품·뷰티·패션 등 융합 신산업 강화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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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제조기업에도 정보기술(IT)업계 출신 전문경영인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전형적인 오프라인 기반 제조업인 식품·뷰티·패션 업체까지 디지털 부문에서 노하우를 갖춘 전문 최고경영자(CEO)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글로벌 빅트렌드로 자리 잡은 '디지털 전환' 이슈에다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 비즈니스의 중요성이 높아진 가운데 IT 전문경영인 등용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식품은 최근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 새로 선임된 김진홍 대표는 전 LG전자 글로벌마케팅센터장으로, 전자 대표 기업에서 커리어를 20여년 쌓았다. 김 대표는 전 직장인 LG전자에서 프랑스법인장을 거쳐 글로벌마케팅센터를 총괄했고, 특히 지난해엔 LG전자의 언택트 마케팅 전략을 진두지휘했다. 비대면 마케팅 전략이 단순한 온라인 마케팅을 넘어 대면 경험과 동일한 수준으로의 구현을 강조하며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가상 전시관, 가상 와인 테이스팅 행사 등을 기획했다.

KTH도 신임 대표이사로 정기호 나스미디어 사장을 내정했다. 정 사장은 지난 2000년 나스미디어를 설립해 국내 온라인 광고 시장을 개척하고 산업 트렌드를 이끌어 온 디지털 미디어 전문가다. 정 사장은 KTH와 나스미디어 사장을 겸임하며 KT그룹의 커머스 사업을 총괄한다. KTH는 오는 7월 모바일 쿠폰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KT엠하우스와 합병, 몸집을 불려서 TV와 모바일을 아우르는 전문 커머스 플랫폼 기업으로의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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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호 KTH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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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희 코스맥스 사장.

뷰티업계도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개발과 온라인 판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IT 기반 인재를 중용하는 추세다.

코스맥스는 올해 디지털사업본부 조직을 신설하고 수장으로 인공지능(AI) 및 융합·산업 전문가인 설원희 전 현대자동차 사장을 영입했다. 설 사장은 글로벌 현장에서 AI와 플랫폼 엔지니어링을 핵심 역량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최근까지 현대차 미래혁신기술센터장을 지냈다. SK텔레콤에서 플랫폼연구원장과 신규사업부문장,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에서 산업융합 MD,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초빙교수 등을 두루 거쳤다.

설 사장 영입으로 코스맥스는 지난 30년 동안 축적해 온 화장품 연구개발(R&D) 노하우와 AI 기술을 접목한다. 세분화된 소비자를 대상으로 최적의 상품을 빠른 속도로 개발하고 디지털 기술로 맞춤형 화장품까지 대응 가능한 생산 체계를 만들 계획이다.

ABT(전 코스토리)는 지난해 사명 변경과 함께 강경훈 전 우버코리아 대표를 영입해 화제를 모았다. 강 전 대표는 2014년 글로벌 모바일 차량 예약 플랫폼 우버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서 설립한 한국법인 우버테크놀로지코리아 대표를 지냈다. 이후 교육 소셜 플랫폼 클래스팅의 최고전략책임자, 글로벌 공유자전거 플랫폼 모바이크의 한국법인 총괄대표, 레진코믹스의 최고운영책임자를 역임했다.

지난해 온라인 전용 브랜드 '인텐스 바이 엘칸토'를 론칭,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며 두각을 드러낸 정낙균 엘칸토 대표는 11번가 출신이다. 정 대표는 SK텔레콤에서 티머니, 기프티콘, 오픈마켓 11번가 등 미래 먹거리 발굴을 주도했다. 11번가와 에비뉴11에서는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엘칸토는 정 대표 영입 이후 장수 제화업체 이미지를 벗고 온라인에 힘을 쏟으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엘칸토 온라인 매출은 전년보다 60% 이상 신장했다. 올해는 100% 성장을 목표로 한다. 인텐스, 마쯔, 더 브라운 3개 브랜드를 온라인 중심으로 확대 운영하는 한편 오픈마켓 및 온라인 편집숍 등 유통 채널별 전용 상품 개발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또 업계 최초로 옴니채널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디지털 CEO' 영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전통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선택을 넘어 필수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기존 산업의 한계를 넘는 융합 신산업을 위해서도 IT 전문가의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점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산업의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면서 기존의 것을 잘하는 전문가보다는 새로운 것을 덧붙일 수 있는 이력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면서 “디지털 전환이라는 화두에 맞춰 IT업계 경험을 쌓은 CEO의 영입에 대한 요구가 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