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삼성·대우, 조선 빅3 '스마트화' 고삐
中·日 등 정부 주도 연구개발로 맹추격
국내 SW 역량 미흡…정책 지원 시급
#조선업 '세계 1위'인 우리나라가 자율운항 선박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조선업 패러다임이 '스마트화'로 변화하면서 첨단 자율운항 선박이 초격차 확대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등 유럽연합(EU) 일부 국가와 일본, 중국 등 경쟁국들은 일찌감치 관련 기술 투자에 나서며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이 현재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처 간 협력 등 자율운항을 위한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 현황은
자율운항 선박은 지능화·자율화된 시스템이 선박을 운항하는 형태다. 기존 선원들이 모든 의사결정에 개입했던 것과 대비된다.
자율운항 선박은 자율화 등급에 따라 구분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이를 1~4등급까지 나눈다. 현재 보급되는 스마트 선박들은 2등급이다. 선원이 승선하되 원격 제어할 수 있는 선박이다. 이에 비해 3등급부터는 선원이 선상에 승선하지 않는다. 특히 4등급은 완전 자율운항이 가능하다. 인공지능(AI) 등 선내 운용시스템이 자체 결정하고 조치하는 완벽 무인 선박이다.
자율운항 시스템 핵심 기술은 다중 센서 인지와 위험 회피 및 최적 대응방안 판단, 최적 항로 및 운용 상태 계산, 통합 제어 등이다. 예를 들어 선박에서 라이다(LiDAR) 및 카메라를 이용해 장애물을 탐지하고 충돌 상황 등을 예측, 회피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운항 상황과 장비 및 시스템 상황에 따라 항로를 재계산하고 엔진 등 모든 장비 및 시스템을 자율·효과적으로 통합 제어하는 것이 관건이다. 도선사 등 도움 없이도 선박을 자동으로 접·이안하고, 육상 인프라 등과 원활한 통신도 가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가 모두 자율운항 선박 개발에 뛰어들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각사는 매년 매출액 대비 약 0.7% 안팎을 관련 연구개발에 쏟아 붓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선박 이·접안시 주변을 보여주는 이접안지원시스템(HiBAS) 기술을 개발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AI가 선박 카메라 분석을 통해 충돌위험을 판단하고. 증강현실(AR) 기반으로 항해자에게 알려주는 하이나스(HiNAS)를 실제 선박에 적용했다. 삼성중공업은 선박 빅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고장을 예측하고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자 스마트십 플랫폼 '에스베슬'을 상용화했다. 대우조선해양도 선박 모니터링 및 설비 관리 솔루션 등을 개발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최근 국내 최초 9200톤급 대형 선박을 원격 제어해 자율운항하는 기술을 실증키로 했다. 독자 개발한 원격자율운항 시스템 'SAS'(Samsung Autonomous Ship)를 탑재한 실습선을 오는 8월부터 목포~제주 항로 중 일부 구간에 투입한다. 삼성중공업은 내년 SAS 시스템 상용화를 목표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 일본 등 경쟁국과 조선 기술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이라면서 “선박용 첨단 기술을 지속 개발해 차세대 자율운항 선박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운항 선박 개발 관건은
우리나라가 자율운항 선박 기술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경쟁국 대비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노르웨이 콩스버그는 세계 최초로 완전 무인자율운항이 가능한 100TEU급 소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했다. 특히 스마트선박 분야 2위로 평가받던 롤스로이스 마린을 인수, 선박운항 전자 및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콩스버그는 2025년까지 내항·근해 선박을 무인화하고 2030년 원양 선박까지 완전 무인화한다는 목표다.
중국과 일본은 국가 주도로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통해 자율운항 선박 개발을 국가 지원한다. 광동성 주하이에 아시아 최초로 세계 최대 면적 자율운항 선박 테스트베드를 조성하고 있다. 장애물 회피 및 선박-육상 통신 등을 집중 테스트해 기술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MMS 및 SSAP 프로젝트를 가동해 자율 운항 제어와 표준화를 위한 개방형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MOL과 미쯔비시 등 해운·조선사는 2025년까지 AI 기반 자율운항 화물선 250척을 건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이전까지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 지원이 산발적으로 이뤄져 왔다.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통부 등이 △ICT 융합 인더스트리 4.0 조선해양 △조선·해양 핵심 기술 개발 등을 각각 별개 지원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산업부와 해수부가 2025년까지 관련 기술 개발에 6년 간 약 16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실증센터 확보 등 체계적 지원을 위해 통합사업단을 발족했다. 이르면 2024년 IMO 기준 자율화 3등급 수준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공개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정부가 전폭 지원하고 기술력마저 앞서 있는 콩스버그 등을 뒤쫓기에는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는 속도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해 지속 지원하고 소프트웨어(SW) 및 AI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노동집약 산업이던 조선업이 이제는 기술집약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선박 건조 및 ICT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자율운항 선박을 위한 융·복합 기술 수준은 아직 뒤처지고 있는 만큼, 관련 인재 양성을 연계하는 정책과 투자 지원이 확대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