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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남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1960년대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출시한 브라운관 TV가 각 가정으로 보급되면서 우리는 전자선과 함께 60년 이상 살아왔다. 지금 30대 미만 젊은 세대들은 모르겠지만 브라운관 TV는 전자총에서 발생한 전자가 브라운관 형광물질에 부딪히며 화면을 만들어 낸다.

종전에는 불가능했던 미세물질을 관찰할 수 있었던 까닭에 나노 세계를 여는 출입문 역할을 한 주사전자현미경 또한 전자선을 이용한 장비다. 이렇듯 전자선은 우리 생활과 과학발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자선도 방사선 일종으로 인식해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대상이 돼버렸다. 법규에 따라 엄격히 관리되는 전자가속기는 심지어 병원에서 찍는 X-레이나 CT보다 방사선 피폭량이 훨씬 적은데도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전자선은 전자총에서 나온 전자를 가속관을 통해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고, 이렇게 가속된 전자가 공기중으로 방출돼 나오는 방사선의 일종이다. 오늘날 전자선은 방사선 가교, 살균, 분해 등에 쓰이는 Co-60(코발트)이나 Cs-137(세슘)같은 방사성동위원소의 방사선 소스를 대체하기도 한다.

고분자, 복합소재, 살·멸균, 나노 입자제조 및 반도체 분야 등 산업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코발트나 세슘의 반감기는 각각 5.27년, 30.17년으로 감마선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감마선은 차폐 관리나 이동 등에 상당한 제약이 있어 유지관리 비용과 안전성 등이 항상 문제가 돼 미국 등에서는 신규 감마선 조사설비 허가가 제한되고 있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사선이 전자선이다.

전자선은 감마선에 비해 파장이 짧아 물질 투과깊이는 짧지만 강력한 이온화 에너지로 단시간에 물질 변화를 유도한다. 전기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감마선 소스에 비해 운영도 용이하다. 이런 장점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분야에 활용하기 위해 4만여기 전자가속기를 운영하고 있다.

전자 투과 깊이는 가속에너지에 비례하는 원리를 이용해 전자의 가속에너지도 용도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두께가 두꺼운 대형구조물 조사 등을 위해 좀 더 깊은 투과깊이를 원하면 가속에너지를 10MeV까지 높이면 되고, 표면처리 등에 활용하기 위해 아주 낮은 투과 깊이를 원하면 200keV까지 낮추면 된다.

오늘날 우리는 전자선을 이용한 제품을 하루도 빠짐없이 접하고 있다. 매일 이용하는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달리는 자동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했다. 대부분 화재 원인이 자동차 내부 전선 때문이었는데, 오늘날에는 이런 형태의 자동차 화재 기사는 찾을 수 없다. 자동차용 전선이 전자선을 이용해 가교한 내열전선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내 경우, 준중형급 이상 자동차용 내열전선은 100% 전자선 가교 전선이다. 이밖에도 고분자 폼, 전력반도체, 의료용품, 자동차 타이어, 열수축 튜브 등 다양한 제품군에서 전자선을 이용한다. 나아가 차량 경량화를 위한 복합소재, 질병치료 목적 의료용품, 초전도체 등의 부품소재 실용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국내에는 60여기의 전자가속기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 원자력연구원에서는 전자선을 이용해 악취를 제거하는 융합시스템 개발하고 실증실험까지 성공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머지않아 이 시스템을 실제 악취 현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환자가 이용하는 대형 병원내 공조시설에도 전자가속기를 설치하면 호흡기를 통한 병원내 감염병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선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대부분 사멸되기 때문이다.

전자선은 전기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전기공급을 허용하거나 차단할 수 있어 완벽하게 통제 가능하다. 단언컨대 전자선은 인간의 통제아래 안전하게 산업 발전과 국민 생활 편익에 활용할 수 있다. 바야흐로 전자선 기술이 첨단 고부가 산업 발전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시대다.

김병남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bnkim@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