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년 150억원 예산을 투입해 전국 신규 아파트를 대상으로 추진하는 전기차 충전기 구축 사업이 시작 전부터 논란을 빚고 있다.
아직 세계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충전 표준을 입찰 설계 기준에 다수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충전기 업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표준을 반영하면 개발과 구축 비용 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공기업인 LH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추진하는 충전인프라 구축 사업인 만큼, 발주기관과 충전업계 간 합의점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LH는 내년 하반기부터 충전설비 입찰을 진행, 2022년 말부터 매년 150억원 예산을 투입해 전국 신규 아파트 등을 대상으로 대규모 충전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걸쳐 현대차 등 완성차, 충전기 제조사·서비스를 대상으로 전기차 충전기 구축 설명회를 개최했다.
LH는 설명회에서 환경부와 한전 입찰 기준과 달리, 현재 OCA(Open Charge Alliance) 주도 국제표준인 'OCPP 2.0' 기반 LH 고유 프로토콜 표준안을 설비기준으로 제시했다. OCA는 전기차 충전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충전기 관리·운영 통신규약 개발 등을 논의하는 국제협의체다.
LH는 고유 프로토콜 채택과 관련 두 가지 이유를 밝혔다. 먼저 향후 신재생에너지 연계와 전력 수요관리(DR) 등 새로운 환경을 고려해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감안했다고 한다. 국내뿐 아니라 국내 업계의 해외사업을 위한 국제표준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또 현재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사용자 인증 호환성, 데이터 집단 관리 등 효율적 설비 운영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LH는 이미 한국기계전기전자연구시험원(KTC)을 인증평가기관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OCPP 2.0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표준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OCPP 2.0은 보안·운영 등 요구사항에 대한 가이드라인만 나온 초기 단계다. 최종 인증 평가 기준이 나오기까지 1년여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 때문에 충전기업계는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표준을 정하면 정식 버전이 나왔을 때 추가 개발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업체는 당장 LH 사업만을 위해 개별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해외사업에도 해당 표준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LH가 요구하는 독자 표준 인증을 받는다고 해도, 해외는 물론 국내서도 전혀 써먹을 수 없다”며 “이미 확정된 OCPP 1.6 버전이 있는데도, 2.0을 무리하게 도입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설명회를 통해 상생협력을 강조했지만, 특정 업체에만 유리한 기준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 측은 “OCPP 2.0 기반 프로토콜을 만들면 향후 정식 버전이 나왔을 때 우리 기업들이 보다 손쉽게 완성도를 높이게 될 것”이라며 “사용자 호환성 등 다양한 사안을 고려해 내놓은 최선책으로, 업체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