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연휴에 문을 여는 한 백화점은 식품관에 스마트 카트 도입을 추진하다 중간에 계획을 접었다. 코로나19가 변수였다. 경영 환경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새로운 시도에 돈을 쏟기엔 부담이 컸다. 해당 기술 개발을 공동 추진한 스타트업 대표는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더라. 전부 '홀딩'하라고”라며 아쉬워했다.
지난해 유통업계는 모험보다 생존이 먼저였다. 특히 오프라인 유통기업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실적 하락에 모두 패닉에 빠져 허둥댔다. 앞뒤 잴 겨를 없이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일단 허리띠를 동여맸다. 리테일 테크 도입도 그만큼 늦춰졌다.
물론 디지털 전환 움직임이 없은 것은 아니다. 회사마다 온라인 사업 강화를 위한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고 비대면 주문 시스템과 무인 계산대를 늘렸다. 다만 이 같은 노력도 당장의 점유율 이탈을 막거나 비용 절감을 위한 운영 효율화가 목적이지 미래 유통기술 혁신을 위한 모험적 시도는 아니었다.
업계 관계자는 “일선 현장에서 흥미로운 신기술 테스트가 확연히 줄었다”고 했다. 백화점을 돌아다니던 로봇 안내 직원과 고객 동선을 따라오던 자율주행 쇼핑카트 등 당장의 투자대비효과(ROI)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험의 경우 주춤한 한 해였다.
새해는 어떨까. 코로나19 상흔이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기술적 진보를 늦춰서는 안 된다. 당장 상용화가 어렵고 효용이 떨어지더라도 고객 쇼핑 경험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실패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리테일 테크 기반의 유통 4.0 시대는 국경을 초월한 시장 경쟁이 펼쳐진다. 아마존, 알리바바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빅테크 기업이 국내 기업의 경쟁 상대다. 이들은 드론 배송과 자동화 로봇 매장 등 벌써 미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내 유통기업도 혁신해야 한다. 최악의 한 해를 넘긴 만큼 새해에는 리테일 테크를 위한 체계적 전략과 전폭적 투자가 요구된다. 정부도 든든한 우군이 돼야 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해 말 백화점을 찾아 디지털 유통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유통 상품의 빅데이터 표준화와 로봇·드론 배송 실증 사업 모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둬야 한다. 위기라고 해서 웅크리기만 해선 안 된다. 새해에는 디지털 혁신을 선도할 유통업계의 과감한 도전을 기대해 본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