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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2021년 새해를 앞둔 연말에 미디어 산업의 올 1년을 뒤돌아보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한 이후 가장 큰 변화를 겪은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미디어 산업 변화를 가속화했다.

록다운 때문에 집에 머물며 우리는 TV라는 매체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느꼈다. 전통의 '안방극장' TV라는 개념보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콘텐츠라도 시청할 수 있는 TV라는 개념으로 변화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거센 열풍이 팬데믹을 만나 광풍을 일으켰으며, 기존 유료방송은 이른바 '더(the)'에서 '어(a)' 방송매체로 변한 것이다. 방송시장에서의 무소불위 위치에서 케이블TV 등장으로 위상이 변한 지상파 방송처럼 이제는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로 선택받는 위치가 됐다.

시청 행태는 OTT 영향으로 팬데믹 이전부터 급속한 변화 조짐이 있었다. 무엇을 언제 시청하느냐를 넘어 원하는 곳 어디서나 시청하고 싶어한 것이다. TV뿐만 아니라 휴대폰과 스마트패드 등 스마트기기를 통한 콘텐츠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변화에서 TV라는 고정된 기기에 한정된 지상파 방송의 위상은 날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지상파 방송에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 바로 '넥스트젠 TV'라고 불리는 ATSC3.0 표준이다.

ATSC3.0은 기존 무선 주파수(RF) 방식과 더불어 인터넷(IP) 기반으로 방송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초고선명(UHD) 4K나 광역동작범위(HDR)뿐만 아니라 IP 특성을 살려 주문형비디오(VoD), 타깃 광고, 타깃 콘텐츠 등 디지털플랫폼처럼 다양한 양방향 서비스를 지원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를 통해 콘텐츠를 동시에 전달하는 것을 넘어 IP 특성을 활용해 타깃을 정해서 타깃에 필요한 콘텐츠나 광고를 전달할 수 있다. 나아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기기로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게 한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시애틀에서는 지상파 방송사가 ATSC3.0 표준을 적용한 서비스를 시작했고, 포틀랜드에서는 케이블TV와 넥스트젠 TV 시험방송을 한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포틀랜드에서 미국 최대 케이블TV 컴캐스트가 포틀랜드 7개 지상파 방송사와 협력해 가입자에게 넥스트젠 TV 재전송 시험방송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 지상파 방송사의 넥스트젠 TV는 공중파를 이용해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케이블TV 광동축혼합망(HFC)을 통해 ATSC3.0 신호를 송수신하는 정합테스트를 한 것이다. 협력 초기 단계로 넥스트젠 TV 4K UHD 콘텐츠를 케이블TV 망을 통해 송수신 성능뿐만 아니라 HDR와 실감음향과 같은 ATSC3.0의 다양한 성능 기술을 시험한다.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자. 언론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TV 간 재전송 협상이 어려워지자 지상파 방송사가 VoD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다행히 연말까지는 블랙아웃 없이 협상을 연장하겠다고 했지만 또다시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TV 간 지루한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다른 한편으로 지상파 방송은 700㎒ 주파수를 UHD로 할당 받으면서 연차 부과된 UHD 편성의무 비율을 재정난 등 이유로 연기를 강력하게 요청했고, 정부가 재조정하기까지 이르렀다.

얼마전 국내에서 벌어진 이 두 사건을 보면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 사업자, 정책담당자는 미국에서 전개되는 넥스트젠 TV 서비스를 거울 삼아 미디어 빅뱅 시대에 깊은 고민과 함께 이제는 실행으로 옮겨야 할 때인 듯하다.

“비록 초기 단계지만 ATSC3.0 표준의 새로운 기능을 사용하는 넥스트젠 TV 서비스를 위해 함께 협력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런 단기간의 정합 노력은 지상파 방송사, 제조사, 케이블TV 기술자에게 기술 성능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력을 줄 것”이라는 컴캐스트 기술책임자의 말을 어려움을 겪는 국내 사업자에도 들려주고 싶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