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과 서비스의 공이 큽니다.” 국제회의에서 외국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비록 최근 일일 확진자 수가 500명을 넘어 사회 불안이 증폭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에 기여한 의료진과 ICT 역할은 인정할 만하다. 단지 그러한 기술과 브랜드가 경제 세계화의 연결고리를 만들지 못해 안타깝다. 우리나라 ICT 서비스가 국내 시장을 넘어 코로나19가 허물어뜨린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갈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TV·냉장고를 주축으로 한 지난 1980년대 우리나라 전자제품은 정부의 국내 시장 보호정책에 힘입어 생존에 성공하고, 미국 백화점 구석에 방치된 상품을 진열대 전면으로 끌어냄으로써 전자제품의 수출 길을 텄다. 후발 주자로서 일등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 비결은 기술 혁신과 국내 시장 보호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위상과 국제사회 급변으로 더 이상 우리나라 중심의 세계화는 불가능하다. 이미 다른 나라와 '경쟁하고 협력하는 줄다리기 게임'을 시작했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일부 품목에 의지해 온 상품과 시장 다양화가 필요하다.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등 인터넷서비스 시장을 미국이 독식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시장의 지각 변동을 예고한다. 중국의 거센 돌진과 유럽·동남아시아의 조용한 부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중국 배타 정책을 끌어냈고, 조 바이든 차기 정부는 미군 파병을 무기 삼아 우방국 협력을 강요하는 수준으로 발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하원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외국회사문책법'이 시행되면 미-중 분쟁은 더 큰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세계화 정책을 현명하게 수립해야 하는 이유다. 아무리 코로나19 대응이 최우선이라 해도, 파괴된 국내 경제를 국제화로 채워야 하는 숙제도 그만큼 중요하다.
정보 보안을 빌미로 미국 정부가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을 시장에서 밀어내는 정책에 집중하고, 자국의 자본시장을 견고히 한다는 이유로 중국을 억제하면서 우리나라 또한 열병을 앓고 있다.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 도입이 저지되고 ICT 교역이 정체될 기미마저 보인다. 중국은 보란 듯이 유럽의 중소기업 디지털화를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온 아프리카 시장도 꾸준히 공략하고 있다. 아프리카 철도 건설을 지원하고 호텔 건설에 참여한 것도 글로벌 시장 확보 전략임이 분명하다.
우리도 그들의 틈새에서 지속 성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지혜로운 세계화 전략을 수립하고, 미-중 분쟁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무조건 미국의 편에 서서 중국의 정보통신기기 도입만을 억제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시장을 다변화하고, 필요하면 중국 기업과의 협력도 마다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19 수혜 기술과 브랜드로 비대면 서비스 및 원격의료 기술 보급에 협력하는 방법도 있다. 화웨이 통신기기의 백도어가 우려된다면 단순한 도입 금지가 아닌 협력관계 증진의 역발상도 고려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강대국 무게에 눌려 세계화를 실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외 직접구매(직구)가 일상화하고 세계 시장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정치나 문화를 핑계로 문을 닫으면 미래로 가는 다리를 스스로 폭파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백의 민족을 주장하던 고집이 슬그머니 교과서에서 사라지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혜로운 판단을 해야 하는 기로에 있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