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산업데이터'를 허(許)하라

현 시점에서 전 세계 산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디지털 전환'이다.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해 전통산업과 사업 구조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대한 고민이 그것이다. 이는 개별 기업과 산업 수준을 넘어 국가 간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민간 플랫폼 기업 중심으로 글로벌 디지털 전환과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또 국경 간 데이터 이동 자유화와 이를 위한 통상규범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관의 디지털 전환 역량만 놓고 보면 미국을 따라잡을 국가 출현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일본은 제조업과 AI·데이터를 결합하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커넥티드 인더스트리' 정책에 속도를 높인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부터 독일과 프랑스 주도로 제조업 중심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위한 '가이아(GAIA)-X'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GAIA-X는 미래 제조업에 적합한 데이터 규모와 다양성을 확보하고, 디지털 및 데이터 주권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과 독일의 디지털 전환 전략은 제조업 및 수출에 주력하는 등 산업 구조가 비슷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자국의 미래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 해답이 제조업 중심 디지털 전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기존 산업 구조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종합 정책이 없다. 빅데이터와 AI 활용은 금융, 통신, 유통 등 제한된 분야에서 개인정보 중심으로 이뤄진다. 데이터 관련 논의가 개인정보에 머무르다 보니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신산업 출현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이제 산업데이터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산업데이터는 제품 개발, 생산, 유통, 서비스 등 산업 활동 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말한다. 산업데이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1년 365일 가동되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포스코의 고로, 전국의 발전소와 전기 사용 데이터만 상상해 봐도 어렵지 않다. 5년 후 생성되는 실시간 데이터의 90%가 자동화 기계에서 생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산업데이터는 곧 빅데이터의 주류로 떠오르고, 산업 부가가치를 높이는 한편 융합 신산업을 창출하는 핵심 자산이 될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가 산업데이터 활용과 디지털 전환을 주도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초기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확인된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자,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 기반도 탄탄하다. 이제 산업데이터와 ICT 인프라를 결합하고, AI와 빅데이터 기술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중견·중소기업들의 디지털 혁신 역량이 떨어지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한 데이터 확보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산업데이터와 AI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법령과 추진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조만간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될 '산업의 디지털 전환 및 지능화 촉진을 위한 법안'에 주목하는 이유다. 조속한 입법을 통해 산업데이터 활용과 보호 원칙을 제시하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기업들의 법적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은 기존 산업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꿀 혁신의 전쟁터다. 그 전쟁터에서 우리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산업데이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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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석 산업에너지부 데스크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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