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통산업으로 꼽혀 온 유통업이 격변기를 지나고 있다.

20여년 전에 출발한 온라인 커머스는 모바일 열풍을 기회로 사업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비대면 거래 비중이 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은 유통에도 여러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기업별로 다양한 시도와 합종연횡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 같은 유통산업 변화의 키워드는 '대형화'와 '디지털'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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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통기업은 기존 틀을 깬 신규 서비스를 확보하면서 '연결'을 통한 대형화를 지향한다. 유통기업의 대형화 욕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온 습관이다. 다만 최근 '점포 수=매출'이라는 공식은 깨졌다. 이보다는 플랫폼, 데이터, 고객접점 포인트 확대를 내세운다. 유통기업은 각자 부족한 부분을 투자나 협력으로 메우고 있다.

CJ는 홈쇼핑과 콘텐츠 회사를 합쳐 새로운 CJ ENM을 가동했다. GS는 편의점과 슈퍼 중심의 GS리테일 및 GS홈쇼핑 인수합병(M&A)으로 온·오프라인 통합 커머스 플랫폼을 지향했다. 고객 데이터도 함께 활용하고 물류 인프라와 배송 노하우를 결합시켜 시너지 확대를 노린다.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의 유통 협력도 새로운 시도다. 국내 최대 이용자를 확보한 플랫폼과 국내 최대 배송망의 결합이다. 앞으로 여러 시도가 나타날 것이고, 업계는 이들이 가져올 생태계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수차례 매물로 거론되던 오픈마켓 11번가는 해외 파트너를 잡았다. 글로벌 최고 유통기업으로 꼽히는 아마존과의 비즈니스 연계로 투자 유치를 추진한다. '스텝 바이 스텝'이 아니라 단숨에 시장 지배력을 높일 방법으로 제휴를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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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혁신의 다른 한 축엔 '디지털 전환'이 있다. 수년 전 이마트와 쿠팡이 생필품 최저가 경쟁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신생기업 쿠팡이 오랜 노하우를 쌓은 유통 공룡 이마트와 맞대결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 경쟁력만 보면 오히려 국내 유통업 헤게모니는 이마트보다 쿠팡 쪽이 더 가져간 모습이다.

유통에서도 기술 발전이 산업을 진화시키고 있다. 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매장을 찾지 않고도 스마트폰을 이용한 상품 구매와 검색이 편리해졌다. 구매자 특성에 맞는 상품 추천이 가능하고, 하루 배송을 넘어 몇 시간 단위의 초고속 배달까지 가능해졌다. 퇴근 후 밤에 주문한 먹거리가 이튿날 아침 아파트 현관문 앞에 도착해 있는 시대다.

오프라인 '유통 공룡' 롯데와 신세계는 각각 롯데ON, SSG를 내세워 e커머스에 도전하고 있다. 홈플러스도 다음 달 새로운 온라인 사업 전략을 공개할 계획이다. 전체 유통시장 파이는 크게 늘지 않는 가운데 온라인 부문이 오프라인 영토를 가져가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다. 이에 발맞춰 유통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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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기를 거치면서 스타트업이 시작한 아이디어형 유통 비즈니스가 업계 주류로 대접받고 있다. 전통 유통시장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마켓컬리나 배달의민족은 이제 우리나라 유통의 주인공이 됐다. 전통의 유통 강자도 온라인 슈퍼마켓, 초단기간 배송 등 스타트업을 벤치마크하며 새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유통 신기술이 늘어나는 가운데 업계엔 다양한 M&A와 업무제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유통산업은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다.


주요 기업은 대형화와 디지털을 기치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경쟁자는 기동하는데 기득권만 지키려 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시대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