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는 다 계획이 있구나.”
포르쉐 첫 양산형 전기차 '타이칸'을 타본 후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영화 기생충 대사처럼 타이칸은 철저한 계획 아래 포르쉐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전기차였다. 높은 완성도로 마치 미래에서 온 전기차를 탄 듯한 착각도 들었다.
1931년 창립한 포르쉐는 스포츠카의 대명사 같은 브랜드다. '오래된 차는 폐차장으로 가지만, 오래된 포르쉐는 박물관으로 간다'는 말처럼 기계적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마니아들은 '외계인이 만든 차'라고도 호평한다.
정통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가 만든 전기차는 어떤 성능을 갖췄을까. 지난주 용인 스피드웨이 서킷에서 열린 '2020 포르쉐 월드 로드쇼'에 참석해 포르쉐가 하반기 국내에 출시할 타이칸을 미리 타봤다.
시승차는 타이칸 라인업에서 고성능 최상위 트림에 해당하는 '터보 S'다. LG화학이 공급하는 93.4㎾h 용량 배터리에 차체 앞뒤 두 개의 모터를 달았다. 최고출력은 625마력, 최대토크는 107.1㎏·m 수준이다. 런치 콘트롤을 사용하면 최고 761마력의 오버부스트 출력도 쓸 수 있다.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 시간은 2.8초, 200㎞/h까지도 9.8초면 도달한다. 최고속도는 260㎞/h로 제한했다.
먼저 차량에 오르려면 자세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 차체 높이가 1378㎜에 불과할 만큼 낮아서다. 공기저항을 줄이고 민첩함을 강조하기 위한 설계다. 낮은 시트 포지션이지만 시야에 큰 문제 없이 도로와 밀착되는 느낌을 준다. 계기판과 디스플레이 등도 미래에서 온 콘셉트카를 탄 것처럼 거의 모든 제어장치에 디지털, 터치 방식을 채택했다.
서킷에 올라 첫 바퀴는 천천히 속도를 높였다. 전기차답게 정숙성이 뛰어나 고요하다. 노멀 모드에서 가속페달에 힘을 주면 높은 출력과 토크가 무색할 만큼 부드럽게 속도를 높인다. 제동 상황에서는 에너지를 전기로 다시 충전하는 회생 제동 기능이 작동되는 데 운전자 입장에서 거의 체감되지 않을 만큼 이질감이 없다. 일상 주행에도 괜찮은 승차감이다.
리어 액슬의 2단 변속기는 포르쉐가 자랑하는 혁신 기술이다. 1단 기어가 출발할 때 가속력을 전달하고, 2단 기어가 고속에서 높은 효율과 출력을 보장한다. 두 개의 전기모터와 에너지 회수 시스템을 갖춘 사륜구동 제어 방식도 주목된다. 최대 265㎾까지 가능한 에너지 회수 시스템 덕분에 제동의 90%를 브레이크 작동 없이 회생 제동으로 대체한다.
다음 바퀴부터는 스포츠 모드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활용해 차량을 몰아붙였다. 가장 인상적 부분은 차량 접지력이다. 타이칸을 위해 개발한 미쉐린 21인치 타이어는 도로와 하나가 돼 움직이는 것처럼 딱 붙어 전진한다. 코너를 과속으로 진입해도 차량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예상을 빗나갈 만큼 안정적인 탈출이다.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스티어링 휠 감각에 무게 중심도 굉장히 낮게 느껴졌다. 2.3톤에 달하는 무게를 앞뒤 49:51로 고르게 배분한 영향이다. 오랜 기간 스포츠카를 만들어 온 포르쉐 기술력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 바퀴에서는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를 켜봤다. 디스플레이 화면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가솔린 스포츠카처럼 가상 엔진음을 들려준다. 차량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가속 시 스포츠카 사운드를 들을 수 있어 운전의 즐거움을 높이는 기능이다. 다만 배기 시스템 자체가 없기 때문에 내연기관차처럼 강력한 배기음이 나진 않는다.
서킷 주행을 마친 뒤 별도의 직선 구간에서 가속력을 테스트했다. 타이칸 터보 S 제로백 2.8초를 체험하는 시간이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계기판 G포스 값이 1G를 가리킨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낙하하는 기분이다. 빠른 가속력만큼 제동력도 놀랍다. 브레이크 디스크와 캘리퍼가 유독 커 보이는 데 10P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서킷 시승이라는 한정된 조건에서 주행 가능 거리는 확인하긴 어려웠다. WLTP 기준 주행 가능 거리는 412㎞인데 국내 인증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타이칸은 기존 전기차의 400V 대신 800V 전압 시스템을 처음 적용했다. 도로 위 급속 충전 네트워크의 직류(DC) 에너지를 활용해 5분 충전으로 최대 100㎞까지 주행할 수 있다. 최적의 조건에서 최대 270㎾ 출력으로 22분에 배터리 잔량 5%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차량에서 내려 외관을 살펴봤다. 지금껏 나온 포르쉐들과 닮았지만 다른 분위기를 낸다. 전면은 보닛과 헤드램프가 이어지는 곡선 라인이 타이칸의 개성을 나타낸다. 두툼한 근육질이 느껴지는 측면은 포르쉐 4도어 모델 파나메라가 떠오른다. 가로로 긴 테일램프와 레터링 등은 최신 포르쉐 모델들과 패밀리룩을 이뤘다.
실내에선 디지털 계기판이 눈길을 끈다. 처음 타는 차량임에도 시각 정보를 간결하게 표현해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변속 레버도 독특하다. 공간은 의외로 넓다. 2900㎜의 긴 휠베이스를 바탕으로 1열은 물론 2열 좌석에서도 편안하다. 엔진이 없는 전기차 특성상 트렁크는 앞뒤에 있다. 앞 81ℓ, 뒤 366ℓ를 제공한다.
포르쉐코리아는 연내 타이칸 기본형 타이칸 4S를 시작으로 내년 고성능 트림 터보와 터보 S를 들여올 계획이다. 가장 먼저 출시할 타이칸 4S 가격은 1억4560만원이며, 이날 시승한 터보 S는 2억3360만원이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