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과학창의재단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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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맛이 영 씁쓸하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사상초유의 징계를 받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종합감사결과 임직원 8명에게 징계 처분, 11명에 경고조치를 내렸다. 이 가운데 5명을 고발했다. 재단 단장 보직자 4명 중 3명이 징계와 고발 조치를 받았다. 역대 정부 산하기관 가운데 징계 수위가 가장 높다. 입맛이 씁쓸한 배경은 강도 높은 징계 탓이 아니다. 창의재단 앞날이 밝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력한 징계로 당장 급한 불은 껐다. 아니 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큰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

창의재단 사태는 '가시밭길' 이사장 임기가 발단이었다. 2014년 이후 이사장 4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정해진 3년이 이렇게 길 줄 몰랐다. 모두 중도 하차했다. '이사장 잔혹사'가 따로 없었다. 가장 최근 부임한 27대 안성진 이사장은 지난달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1년 6개월 남긴 시점이었다. 2018년 12월에 취임해 사의 때까지 각종 투서와 구설에 휘말렸다. 전임 26대 서은경 이사장 재임 기간은 99일이었다. 2018년 5월 부임했지만 연구비 부정 집행 의혹 등으로 3개월 만에 사임했다.

26·27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흑역사는 24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4대 이사장인 김승환 포스텍 교수는 그나마 긴 편이다. 2014년 4월에 부임해 2016년 8월까지 22개월을 근무했다. 그래도 3년을 채우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 25대 박태현 이사장이 취임했지만 1년 만에 사퇴했다. 24대부터 27대 이사장까지 4명이 줄줄이 낙마했다. 평균 재임기간은 1년을 넘지 않는다. 24대 이후 이사장 공백 기간만 1년하고도 1달이다. 이사장 취임과 퇴임에 따른 행정 낭비도 상당하다.

알려진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정권 입맛에 따라 바뀌는 낙하산 인사의 숙명일 수 있다. 조직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교수 출신 이사장의 리더십 부재도 꼽힌다. 조직 내부의 알력다툼에 휘말린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이사장과 담당 부처간 갈등도 거론된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복합적일 수도, 외부에서 모르는 더 확실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징계 수위를 높인 데는 내부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손쉬운 방법은 비난 대상을 찾는 것이다. 희생양을 찾으면 문제 해결은 단순하고 쉬워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단순한 방법에 갇히면 복잡한 진실이 가려진다. 정작 중요한 해법을 놓칠 수밖에 없다. 일단 급한 불은 끄겠지만 불씨는 남는다. 강력한 징계 배경은 '재발 방지'에 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도 의미가 크지만 미래를 위한 준거점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당장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보여주기 조치에 그친다면 '이사장의 무덤'이라는 오명은 정말 무덤에 묻힐 수 있다.

지배구조와 조직운영과 같은 시스템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동시에 관리하는 체제가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67년 재단이 설립해 50년이 넘는 시점에서 과거 목적이었던 '과학기술 문화 창달과 창의적 인재 양성'이라는 역할에 집중해야 하는 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 마치 '실험실의 코끼리'처럼 누구나 아는 더 큰 문제를 불편하다는 이유로 놓치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징계는 창의재단을 바로 세우기 위한 첫 단추일 뿐이다. '쪼개거나 해체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백지상태에서 과감한 쇄신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창의재단이 아니라 대한민국 과학문화 현주소를 다시 점검하는 계기여야 한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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