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 스타트업 고객님 3번 창구입니다"...은행 지점의 '파격'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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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인사이트 지점이 국내 스타트업 육성 허브로 변모하고 있다. 허인 국민은행장이 지점에 설치된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금융보안 기업 A사 대표는 지난해 대형 금융사에 사업 제안을 하기 위해 대형 은행을 수십차례 방문했다. 임원 미팅은 고사하고 해당 실무진을 만나는 것도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수차례 연락 끝에 사업제안서를 들고 미팅을 잡았지만, 제안서를 놔두고 가라는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결과도 수개월이 지났지만 없었다.

그런데 최근 해당 회사 대표는 은행 창구를 찾아 사업제안서를 제출했다. 2주일이 채 되지 않아 KB국민은행에서 개념검증(PoC)을 같이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현재 공동 사업 논의가 진행 중이다. A사 대표는 “금융 서비스만 제공하던 은행 창구가 스타트업 사업 육성 산실로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PC와 스마트폰의 발달, 비대면 채널 대중화로 기능이 날로 축소되고 있는 은행 지점이 스타트업의 새로운 협업 통로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중은행 최초로 정보기술(IT) 금융 인력으로만 운영하는 'KB인사이트' 지점이 국내 스타트업 사업 제안 채널 허브로 변모하고 있다.

KB인사이트 지점은 모든 은행 업무를 IT 인력이 담당한다. IT에 능통한 인력이 이용자와 소통하고, 디지털 금융 상품과 서비스 등을 함께 체험하고 공동 사업까지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었다. 바로 '테크 데스크'라는 인프라다.

유망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지점 창구에서 사업 제안을 즉시 할 수 있는 국내 유일 시스템이다. 운영 8개월 만에 성과는 괄목할만하다. 테크 데스크를 통해 접수된 공동 사업 제안만 46건에 달했다.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보안 등 유망 스타트업이 인사이트 지점을 통해 사업 협업의 꿈을 갖고 뛰어들고 있다.

그 결과 46개 사업제안 중 5곳 기업과 현재 PoC가 진행 중이며 이르면 하반기 콜라보 사업을 펼치게 된다. 파인트리 파트너스의 'AI를 이용한 부실여신 예측 모델', 앤톡의 '기업고객 마케팅용 웹크롤링 파일럿' 등 유망 기술과 서비스가 빛을 보고 있다. 그 외에도 블록체인과 보안, 빅데이터 등 유망 스타트업 기술력 검증과 공동 사업 협의가 진행 중이다.

지점 단일 창구에서 50여곳에 달하는 사업 협업 제안이 들어온건 이례적이다.

최근 핀테크 랩 등을 은행이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지만 공모를 통해 선정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콘택트 포인트가 도대체 어디인지 알수 없는 기업 불만이 상당했다.

국민은행은 이 같은 문제점을 파악해 허인 국민은행장과 이우열 IT그룹 대표가 인사이트 지점을 즉시 만들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립스틱 디지털'을 지양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경영진의 뚝심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사이트 지점을 이용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비록 사업 제안에는 실패했지만 IT를 잘 아는 인력과 소통을 할 수 있어 불만은 없다”며 “최근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스타트업이 인사이트 지점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본지가 입수한 인사이트 지점 사업제안서를 분야별로 분석한 결과 △AI·머신러닝 부문 9건 △블록체인 4건 △보안 18건 △기타 14건 등이었다.

한 SW기업 대표는 “은행과 협업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인내심과 시간이 필요했다”며 “최근 우리도 국민은행에 인사이트 지점 채널을 활용해 사업 제안을 넣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보다 혁신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 인사이트 지점은 직원에게 KPI를 적용하지 않는다.

이우열 국민은행 IT부문 대표는 “핀테크 등 유수 기업들이 이제는 은행 지점을 통해 컨설팅과 협업 상담을 받고 사업화까지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며 “디지털 혁신 패스트트랙으로 인사이트 지점을 확대 운영해 전통 금융과 스타트업이 콜라보해 한국 금융 생태계를 바꾸는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표]KB인사이트에 접수된 부문별 기술(사업) 현황(자료-본지 취합)

"8번 스타트업 고객님 3번 창구입니다"...은행 지점의 '파격' 변신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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