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끝 무뎌진 공정위, '동의의결제' 논란...사후 관리 과제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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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애플코리아에 대해 동의의결제를 개시하면서 '법 위반 판단'을 더 이상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해당 제도가 피심인이 제재를 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불공정거래 행위를 자진시정하는 후속 조치가 뒤따르는 만큼 당국의 사후견제는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애플코리아의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에 관련한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최근 사례로 애플코리아, 남양유업의 거래상 지위 남용 사건에서 개시된 동의의결제는 응보주의보다는 보상의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제도다.

동의의결은 거래 상대방의 피해를 구제할 시정 방안을 사업자가 스스로 제안하고 실행하는 제도다. 공정위가 타당하다고 인정하면 법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다.

당국의 이번 결정으로 위법이 명백한 애플에 공정위가 이통사·소비자와 상생하겠다는 반성문 한 장에 최대 매출 2%에 이르는 막대한 과징금을 면제해주게 됐다.

그러나 사실상 피심인 측인 애플이 동의의결이 개시된 이후 법 위반 행위를 부인하는 등 시정의지를 내비치지 않자 논란이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제재조치를 피하면서도 해외 경쟁 당국 조사를 받거나 소송을 당할 우려가 사라지면서 경영상 이익을 봤다”는 평가도 나온다. 피심인 입장에서는 과징금 등 법적 제재조치를 피하면서 '솜방망이 처분'을 받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간 공정위는 '봐주기' 지적을 고려해 현대모비스·LS·골프존 등의 동의의결 신청을 계속 기각해 왔다. 그러나 지난달 남양유업에 이어 애플까지 동의의결을 수용하면서 '칼끝이 무뎌졌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동의의결이 ICT 기업에 적극 활용되는 것은 시장 특성과 관계있다. ICT 시장은 변화 속도가 빨라 기업이 장기간에 걸친 법적 공방의 실효성이 낮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ICT 불공정거래는 조치 선례가 없을 때가 많고 사안이 복잡해 제재 여부 확정이 장기화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 공정위가 동의의결 개시를 결정한 ICT 기업은 △네이버·다음(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SAP코리아(거래상 지위 남용) △마이크로소프트-노키아(기업결합) △SK텔레콤·KT·LG유플러스(부당 광고) 등이 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도 ICT 등 신성장 분야에 동의의결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동의의결 개시는 면죄부 논란과 함께 체계적 사후관리라는 사회적 해결 과제를 던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애플은 자구책 일환으로 이통사에 불리한 거래 조건과 경영간섭 내용을 담은 계약서도 고칠 예정이다. 애플은 또 이통사 외에 중소사업자·프로그램 개발자·소비자와의 상생을 위해 사용할 상생지원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익명의 로펌 관계자는 “동의의결제를 두고 논란은 예견된 일”이라면서 “제재조치를 내리지 않은 이상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선 당국의 철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재희기자 ryu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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