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정동수 전국총괄 부국장
“지식재산(IP) 침해 행위는 혁신가들을 시장에서 좌절하게 만듭니다. 지식재산 보호 정책을 강화해 거래 시장이 형성되고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혁신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2018년 9월 취임 이후 '지식재산이 제값 받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지난해 특허침해 3배 배상제도 도입으로 손해배상액을 높였고, 최근 특허침해를 하면 특허권자의 생산능력을 초과 판매한 제품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하도록 현실화했다. 특허기술거래와 지식재산금융이 활성화되도록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박 청장은 2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특허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식재산에 대한 국민 인식을 높이기 위해 특허청 명칭을 지식재산혁신청으로 변경하거나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특허정보를 적극 활용하는 등 자신의 임기 내 이루지 못한 정책은 조직 스스로 해결해 역량과 볼륨을 키워나가도록 기반을 다져놓겠다는 생각이다.
-지난 20일 손해배상액 현실화를 위한 특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법은 어떤 것이며 지난해 시행된 특허침해에 대한 3배 배상제도와 어떤 관계가 있나?
▲지식재산 침해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손해배상액과 형사 처벌 수준을 고려하더라도 제값을 지불하는 것보다 침해를 통해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행된 3배 배상제도는 손해배상액을 높여 지식재산이 제값을 받도록 하는 첫 번째 단추였으며, 이번 개정법은 특허권자의 생산능력을 초과하는 침해자 제품판매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한 두 번째 단추다. 현행 특허법에서는 특허권자 제품 생산능력이 100개인 경우 침해자가 1만개의 침해제품을 시장에 판매해도 특허권자 본인 생산능력(100개)을 초과하는 9900개의 제품에 대해 제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개정법이 시행되면 생산능력 초과분에 대해서도 배상이 가능하다. 특허권 침해에 대한 3배 배상제도에 이어 개선된 손해배상액 범위 확대로 손해배상액이 현실화되면 3배 배상액도 자연스럽게 증액될 것이다. 이를 통해 지식재산 가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는다면 지식재산을 매개로 한 기술거래와 금융거래가 활성화될 것이고, 기업도 후속 기술개발에 투자할 환경이 조성돼 더 강한 지식재산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세계에서도 특허기술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데 지난해 우리나라 PCT 국제출원이 크게 늘었다. 어떤 정책적 지원이 있었는가?
▲한국의 특허출원은 약 22만건 수준으로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출원만큼 해외 특허출원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경쟁국에 비해 국내 출원이 해외 출원으로 전환되는 비율도 상당히 낮은 상황이다. 이 같은 격차가 해외시장을 확보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문제인식에서 지난해 국가차원 해외 지식재산 확보 전략을 마련했다. 해외 출원 비용지원 확대, 해외 지재권 전략 컨설팅 제공 등 입체적인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지원 덕분에 지난해 우리 기업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제출한 PCT 국제특허출원이 전년 대비 11.2%(1만9085건) 증가해 해외 특허출원 확대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국제출원 상위 10개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증가세다. 특히 한국보다 국제출원이 많은 중국, 미국, 일본, 독일 4개국 중에서 독일과 출원량 차이를 2018년 2825건에서 2019년 268건으로 줄이고 있어 곧 국제특허출원 세계 4강이 예측된다. 다른 여러 경제지표들이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하향세를 보이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위기 국면에서도 지식재산 창출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라 의미가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 지식재산 금융 규모가 1조원을 돌파했다. 지식재산 금융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더 기울일 계획인가?
▲2년 전 7000억원 대에 머물던 지식재산금융이 지난해 77% 급증하며 1조3500억원을 기록, 지식재산 금융 1조원 시대가 열렸다. 금융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 많은 금액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상당히 발전적인 변화다. 특히 지난해 지식재산 담보대출의 규모가 5배 성장한 것이 1조원 시대 개막에 큰 역할을 했다. 지식재산 담보대출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지난 2월에 IP 담보 회수지원기구도 출범시켰다. 앞으로 부실이 발생해도 회수지원기구가 직접 담보 지식재산을 매입하게 돼 은행 위험이 완화될 것이고, 더 적극적인 IP 담보대출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는 IP를 보유한 혁신기업에 금융이 공급될 수 있도록 IP 자산을 투자대상으로 하는 IP금융투자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할 계획이다. IP 자산이 새로운 금융투자 대상으로 부각되면 표준특허 등 유망 IP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경제적 혜택을 얻게 된다. 또 지식재산에 투자된 자금은 산업계로 유입돼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민간 공모형 IP 투자펀드, IP 크라우드펀딩 등 새로운 형태의 IP 직접투자펀드 형성을 지원하고 정부도 직접 모태펀드를 통해 400억원 규모 IP 직접투자펀드를 올해 조성할 계획이다.
-특허청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허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에게 어렵고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둔다는 느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기관명에 사용된 '특허'라는 용어는 일반인에게 어렵고, 혁신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국가로부터 허가받아야 한다는 권위적 사고도 내재돼 있다. 또 특허청은 특허뿐 아니라 상표, 디자인, 영업비밀 등 지식재산 전반을 관장하지만 '특허'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 갇혀있다. '특허를 부여하는 기관'에서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국가혁신을 주도하는 기관'으로 질적 전환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사적 책무임을 감안할 때 기관 명칭 변경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지식재산 기반 혁신성장에 대한 의지와 비전을 천명하는 의미를 담아 '지식재산혁신청'으로 명칭 변경을 추진 중이다. 명칭이 바뀌면 특권적 느낌의 시혜적 권리를 다루는 기관이라는 소극적 의미를 벗어나 혁신성장 핵심요소인 지식재산의 적극적 의미가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국내 지식재산 담당 부처가 분산돼 있어 기관명 변경에 일부 부처의 이견이 있는 상황이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도록 노력하겠다.
-코로나19 관련해서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데 특허청은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먼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많은 분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최전선에 계시는 방역 관계자나 의료진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 특허청 역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위기 극복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힘쓰는 기업들을 직접 만나서 지원방안도 모색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진단키트, 치료제, 백신 생산기업 등 10곳 남짓한 기업을 방문했다. 외국 특허청장들도 하늘길이 막혀 보기 힘들 줄 알았으나 화상회의를 통해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매주 한두 차례 영상회의를 통해 세계 20여개국 특허청장, UN 산하 세계지식재산기구 사무총장 등을 만나고 있다. 지식재산 분야가 국제적 협업을 통해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 특허청은 2월 말부터 '코로나19 대응 TF'를 구성해 상시 대응체계를 갖췄다. 가장 먼저 중점을 뒀던 것은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특허청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민원인 면담 등 주요 업무 절차를 모두 비대면화 해 접촉에 의한 전파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만약의 팬데믹 상황에 대비해 특허청 전 직원 1900명이 동시에 재택근무가 가능한 시스템도 준비했다. 국민의 창의적인 역량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집중했다. 코로나 관련 기술을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해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해소되도록 하고 있다. 서류 제출기간을 연장한다거나 지식재산을 담보로 한 대출을 신속히 처리, 특별재난지역(대구·경북)에 대해 수수료를 감면하는 등 피해 발생 방지를 위한 선제적 조치도 취하고 있다. 특허청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서 공개한 '코로나19 특허정보 내비게이션'은 국내외 연구자들과 기업들이 특허정보를 활용해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코로나19 위기극복 대책을 통해 이룬 성과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우리 코로나 대응역량이 K-방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한류로 발전하고 있다. 특허청도 이와 같은 새로운 흐름이 좋은 성과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한국형 워크스루다. 지난 4월 중순에 발명자들과 함께 모여 여러 지원방안을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공동 브랜드가 제품 우수성을 보다 더 쉽게 알리는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 특허청이 제안한 'K-워크스루'라는 공동브랜드 사용에 발명자들이 모두 합의해 줬다. 범정부적 지원이 개시된 이후 'K-워크스루'는 태국, 러시아 등 9개국에 300대 이상 수출되고, 노하우도 6개국에 전수됐다. 앞으로도 진단키트·워크스루 등 K-방역 기자재가 세계로 진출해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새로운 코로나19 진단기술은 우선 심사를 통해 신속하게 특허를 받았다. 등온증폭법이라고 불리는 이 발명은 상대적으로 적은 시료를 사용하고 진단시간도 줄일 수 있어 시간과 장소 조건에 따라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술이다. 일반적인 특허출원이 등록까지 약 16개월 정도 기간이 소요되지만 이 발명은 3인 심사관 협의를 거쳐 단 두 달 만에 등록됐다.
-'지식재산정책 혁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취임 당시 목표 달성을 위해 남은 과제가 있다면.
▲취임 당시 이와 같은 목표를 강조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낼 새로운 시장에서 산업 경쟁력을 지탱하는 것은 혁신적 기술과 지식재산의 확보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K-방역 성과가 한국인의 혁신 DNA에 기인한 것임을 보면 더욱 그렇다. 특허청은 우리의 혁신 DNA가 튼튼한 지식재산시스템을 통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식재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식재산이 적절히 보호받고 그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하는 게 필수다. 고의적 특허침해에 대한 3배 배상제도를 도입한 것이나 사상 최초로 '지식재산 금융 1조원 시대'가 열린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의미가 큰 성과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정하면서도 역동적인 지식재산 시장을 만들기 위해 K-디스커버리 제도와 같은 권리자 보호 장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 혁신의 성과가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아야만 또 다른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지식재산을 투자 대상으로 확고히 뿌리 내리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요소가 바로 지식재산이다. 곧 발표될 '지식재산 금융투자 활성화 전략' 등을 통해 이러한 목표를 이뤄나가도록 하겠다.
<박원주 특허청장 프로필>
박원주 특허청장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광주 송원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행정고시 31회로 공직에 입문해 산업부 산업정책관, 기획조정실장, 산업정책실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거쳐 2013년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됐고, 2016년 대통령 산업통상자원비서관을 지냈다. 2018년 9월 특허청장 취임 이후 '노력하는 청장'이란 평가를 받고 있을 만큼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정리=양승민기자 sm104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