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투자회사를 중심으로 한 벤처투자산업은 어느 정도 질적 발전을 거뒀지만, 출자 영역은 여전히 정부 주도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으로 벤처투자 시장에 대한 민간 출자자의 심리 역시 덩달아 사그라든 분위기다. 벤처펀드 '매칭 대란'에 대한 우려까지 불거진다.
25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독립계 벤처캐피털(VC)을 중심으로 민간 출자자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최근 출자사업 접수를 완료한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 1차 정시사업 접수에는 총 226개 조합, 3조3000억원의 신청이 몰렸다.
모태펀드는 이번 1차 정시사업에서 1조1000억원을 출자한다. 출자 사업에 선정된 VC 모태펀드가 출자하는 금액에 준하는 금액을 민간으로부터 끌어와야만 최종 펀드 결성을 마무리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모태펀드 뿐만 아니라 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 등의 출자도 대규모로 집행된다. 산업은행과 성장금융이 출자하는 성장지원펀드 역시 총 8800억원을 출한다.
성장 단계 기업에 자금을 주로 투입하는 성장지원펀드의 특성 상 최종 펀드 결성을 위해 VC가 끌어와야 하는 민간 자금의 비중은 더 크다. 약 1조7000억원 가량의 민간 자금을 확보해야만 최종 결성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VC들은 늦어도 올해 중으로는 2조8000억원 안팎을 민간에서 확보해야만 한다. 지난해 하반기 출자사업에 대한 매칭 자금을 포함하면 규모는 더욱 커진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통상 연초에 민간 매칭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미팅이 이어진다. 하지만 올해는 갑작스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투자확약서(LOC)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우호적인 금융기관을 출자자로 확보하고 있던 VC야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나머지 독립계 VC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면서 “연기금조차도 벤처투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민간 출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주된 이유는 벤처투자에 지속 관심을 기울이는 전략 목적의 투자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꾸준히 증가 추세를 이어오던 벤처펀드 신규 결성 금액은 지난해 5년 만에 하락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출자가 지연되면서 자연스레 펀드 결성 역시 늦어진 것이다.
올해는 이런 현상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게 벤처투자업계 중론이다. 실제 지난해 결성된 벤처펀드 4조1105억원 가운데 33.3%인 1조3687억원은 모태펀드와 성장금융 등 정책금융기관이 출자한 금액이다. 2018년의 9352억원에 비해 46.3%가 늘었다.
반면 연기금 출자는 2018년 6363억원에서 지난해 1973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금융기관 출자 역시 1조220억원에서 5343억원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민간 영역의 출자가 줄면서 전체 펀드 결성 금액도 크게 감소한 셈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에 확산으로 민간 출자 여력은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은 증시안정자금 재원 출자 등으로 연기금 역시도 투자 환경 변화에 따른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 등을 이유로 벤처출자를 줄일 수 밖에 없다는 시각이 파다하다.
실제 대기업 등에서는 벤처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는 꺼리는 분위기다. 전략 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벤처캐피털을 설립해 직접 투자에 나서는 것은 선호한다. 기업 전략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서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연기금과 금융권으로만 제한된 출자자 스펙트럼을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으로 넓히지 않고는 벤처투자 생태계가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를 비롯해 대기업 등이 벤처투자 생태계에 뛰어들만한 유인책을 정부가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