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 구매 공간이었던 편의점이 생활밀착형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양한 기술 도입과 생활 편의 시스템 도입 등으로 단순 판매장이라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진화를 거듭한 편의점은 지난해 처음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이익을 앞지르기까지 했다. e커머스와 온라인 유통업체 공습에도 편의점은 나홀로 성장을 거듭하며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유통 채널'로 자리매김 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 편의점 점포 수는 1990년 39개에서 지난해 기준 4만2258개로 크게 늘었다. GS25와 CU는 지난해 각각 2565억원, 196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경기 부진 등의 이유로 성장한계에 직면한 오프라인 매장이지만 GS25와 CU의 영업이익률은 3%대에 달한다. 30주년을 맞은 편의점 업계가 이룬 주요 성과다.
국내 최초 편의점은 1989년 5월 서울 송파구에 들어선 세븐일레븐 올림픽선수촌점이다. 초창기 편의점은 다양한 물건을 팔면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현대식 구멍가게'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생활 편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늘려갔다. 1997년에는 LG25(현 GS25)와 패미리마트(현 CU)가 전기료, 전화료 등 공공요금 납부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0년에는 편의점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설치돼 입출금, 잔액 조회 등 간단한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2001년에는 택배 서비스를 도입하며 편의점에서도 택배를 보낼 수 있게 됐다.
이후 1인 가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며 2007년 전국 편의점 점포 수는 최초로 1만개를 돌파했다. 이어 2011년 2만개, 2015년 3만개, 2018년 4만개를 넘어서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큰 폭의 성장세에 1만개 점포 증가 주기도 짧아졌다.
이처럼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편의점들은 1인 가구, '혼밥족'을 공략하기 위해 도시락, 삼각김밥 등 다양한 식품을 선보였다. 이후에는 무인택배함, 물품 보관, 휴대전화 충전, 교통카드 충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1인 가구 공략에 집중했다.
편의점은 이미 포화 상태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업계에서는 양적 성장보다는 상품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등 내실을 다지는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편의점 업계는 최근 금융, 배달, 모빌리티 플랫폼 등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CU는 3일 통합 결제 비즈니스 전문기업 다날과 업무협약을 맺고 '페이코인(Paycoin)' 결제 서비스를 매장에 도입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를 편의점에 도입한 것이다. 결제 시에는 '페이 프로토콜 월렛'의 바코드를 스캔하면 결제 시점의 페이코인 환율에 따라 상품 가격이 페이코인으로 환산돼 차감된다.
이밖에도 CU는 24시간 편의점 무통장 송금 서비스를 선보였으며 카카오페이, 페이코, 삼성페이 등 20여 가지의 모바일 기반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건수는 2017년 81.4%, 2018년 122.8%, 2019년 158.2%에 달하는 가파른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GS25 역시 여러 은행과 업무협약을 맺으며 금융 서비스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업계 최대 수준인 전국 1만1800여개 점포에서 ATM기를 운영중이며 신한, KB국민, 우리, SC제일은행, 카카오뱅크 등과 함께 ATM 수수료 면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GS25의 지난해 ATM 이용 현황은 입출금 및 이체 금액은 총 6580만건, 연간 거래 금액은 11조원을 넘어섰다.
GS25는 생체 인식 기능과 함께 계좌개설, 카드 발급 등 비대면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스마트ATM'도 현재 3600대에서 올해 5000대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편의점 업체들은 하이패스 단말기 판매나 충전, 전기차와 전동 킥보드 충전 등 모빌리티 플랫폼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GS25는 지난해 9월 업계 최초로 고객이 점포에서 전동 킥보드를 충전하거나 점포 밖 전용 공간에 주차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전동 킥보드 서비스 이용을 위해 편의점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이를 도입한 점포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약 18% 증가했다.
CU는 차량공유 업체 '쏘카' 등과 손잡고 공유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가나 원룸 인근 점포에 'CU쏘카존'을 도입했으며 이곳에서 이뤄지는 공유차 대여율은 기존 '쏘카존'보다 20~30% 더 높다.
지난해 본격 도입된 세탁대행 서비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탁소 네트워크 어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GS25는 '리:화이트', CU는 '오드리세탁소'에 신청한 뒤 인근 편의점에 세탁물을 맡기면 된다. 세탁은 편의점 주변 세탁소에서 이뤄지며, 1~2일 후 고객이 편의점에서 찾아가거나 지정한 주소로 배송된다.
GS25는 세탁 서비스가 좋은 반응을 얻자 숍인숍 형태 코인워시 셀프세탁방 '런드리 존'(Laundry Zone) 매장도 오픈했다. 매장 한쪽에 셀프 세탁기를 도입해 코인 빨래방과 편의점을 결합한 것이다.
세븐일레븐도 2017년 전용 수거 기능을 갖춘 세탁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세탁물 종류를 입력하고 투입구에 세탁물을 맡긴 후 접수증을 수령하면 되는 방식이다.
편의점은 이같은 생활 편의 서비스 외 기상관측소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12월 기상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옵저버'와 함께 다양한 날씨를 관측할 수 있는 기상관측장비를 점포 별로 설치했다. 초미세먼지, 기온, 습도, 강수유무 등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으며 세븐일레븐은 수집된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기상정보 활용시스템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점포 전산장비와 연동시켜 모객 효과를 극대화 해 매출을 높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이 주요 소비 채널로 자리잡으면서 생활 편의를 높이는 서비스들이 차별화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러한 기능들이 향후 편의점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현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