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재계 안팎에서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규제가 해소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강력한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자기자본이 아닌 타인의 자본을 수혈해 계열사를 확장하는 부작용 등을 우려해 강하게 반대 의견을 표하고 있다.
현행 제도 아래서는 원칙적으로 기업이 CVC를 보유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한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하면 금산분리 원칙 위반에 따른 제재를 받는다. 또 대기업에 속하는 회사가 CVC를 보유하면 후속 투자에 제한을 받는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법률로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이나 자본차익을 노린 금융투자 등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이러한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는 금융업종에 해당하는 CVC를 자회사로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계열사 편입 역시 금지하고 있다.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자회사로 소유하기 위해서는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전환 이후에도 2년간은 자회사 주식을 소유하는 것도 제한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일반 지주회사가 100% 출자한 완전 자회사인 경우 △중소·벤처기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전업 창업투자회사인 경우 △모회사 등 자기자본 출자로만 결성한 펀드로 제한된 CVC라는 기본 원칙을 정한 것도 금산분리 원칙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대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지주회사와 모회사 등이 100% 자기자본만으로 투자금을 모으는 만큼 금산분리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주된 업무로 수행하는 창업투자회사의 특성 상 사모펀드(PEF) 등 여타 금융기관과는 달리 벤처활성화라는 정책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신기술금융사나 PEF 등 금융위원회 소관 투자기구와는 달리 창투사는 중기부로부터 관리·감독을 받고 있는 만큼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사전에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현재로서 CVC 도입을 위해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CVC 도입이 벤처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과 재계의 숙원 과제인 만큼 금산분리 원칙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CVC 도입을 비롯해 차등의결권까지 벤처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유재희기자 ryu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