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별세]'실패 모르는 자수성가 경영자' 롯데 창업주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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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시작해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를 아우르는 대기업을 일궈낸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경영자로 통한다. 노잣돈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까지 고학했던 그는 껌 사업을 시작해 롯데를 국내 재계 순위 5위 재벌로 성장시켰다. '실패를 모르고 꾸준히 도전하는 기업인'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등과 함께 대한민국 1세대 대표 기업인으로 한국 산업경제 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

신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거대 기업을 일궈냈다. 껌 파는 식품업으로 시작해 대기업으로 롯데그룹을 키웠고 70년 가까이 총수로서 그룹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현역에서 가장 늦게까지 활동한 1세대 재계 기업인으로도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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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명예회장은 1940년대 초 20대 초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팔이, 우유배달 등의 일을 하면서 일본 와세다대학까지 고학했다. 첫 사업이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지만 신 명예회장은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상황을 신용을 통해 극복해갔다.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면서 진정한 사업가 길에 들어섰다.

신 명예회장은 1948년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 법인사업체를 만들고 껌 회사인 ㈜롯데를 창업했다. 문학에 심취했던 신 명예회장은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샤롯데' 이름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왔다. 모든 제품이 샤롯데처럼 소비자로부터 영원히 기림 받는 매력적인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생전 “롯데라는 신선한 이미지를 바로 상호와 상품명으로 택하기로 한 결정은 내 일생일대 최대의 수확이자, 걸작의 아이디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힐 만큼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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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당시는 간식거리가 없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오래 즐길 수 있는 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껌으로 큰 돈을 번 신 명예회장은 초콜릿, 비스킷, 음료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롯데는 1959년 롯데상사,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유통업 부문을 휩쓸며 일본의 10대 재벌로 성장했다.

◇고국투자-현해탄 경영의 시작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명예회장은 조국 대한민국 기업 설립에 눈을 돌렸다. 1966년 한·일 수교로 투자의 길이 열리자 사업을 국내로 확장해 1966년 롯데알미늄,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한국 롯데제과 설립 당시 신 명예회장은 “새롭게 한국 롯데 사장직을 맡게 되었사오나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할 줄 생각되지만 소생은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습니다. 소생의 기업 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 입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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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제과에 이어 1970년대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현 롯데푸드)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또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1973년에는 동양 최대 초특급 호텔로 '한국 마천루'라고 불려진 롯데호텔을 완공시켰다. 6년여 기간 동안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달러 투자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산업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호텔 사업 구상은 신 명예회장과 롯데그룹에는 모험 그 차체였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신 명예회장의 신념에 따라 롯데호텔이 탄생했으며 이러한 결단에 따라 해외 체인을 오픈할 만큼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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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이어 신 명예회장은 국가 경제의 발전과 유통업 근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백화점 사업에 도전했다.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 건립공사는 1976년 시작해 1979년 12월에 완료됐다. 당시 기존 백화점에 비해 2~3배에 해당하는 규모였으며 현재까지 1위 백화점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또 신 명예회장은 기간산업에 투자해 모국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하면서 중화학 기업에의 꿈을 이루게 됐다. 호남석유화학은 케이피케미칼 등 국내 유화사와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롯데그룹 성장의 한 축으로 성장했고, 2012년 '롯데케미칼'로 사명을 바꾸고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후 1980년 한국 후지필름, 1982년 롯데 캐논·대홍기획 등을 설립하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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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한 통을 팔아가며 기적을 일궈낸 신 명예회장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맞이해 국내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7년 초에는 숙원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도 개장했다.

각종 교통, 도시계획 등의 이유로 사업계획이 잇달아 반려됐지만 신 명예회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를 짓겠다는 일념으로 제2롯데월드 건설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2011년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빌딩을 포함해 80만 5782㎡에 이르는 '롯데월드타워'를 완공시킨 것이다. 30여년에 걸친 신 명예회장의 집념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이자 최대 규모의 쇼핑몰로 탄생한 롯데월드타워는 고용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한편, 서울의 랜드마크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며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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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불모지인 모국에 기업을 일으켜 국가와 사회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신 명예회장의 일념은 창업 초부터 지금까지 퇴색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기업보국' 정신이 풍요로운 미래생활의 창조로 연결되고 있다는 평가다.

신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정직과 봉사, 정열로 압축된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생산 활동을 통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데 있으며 이로써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다. 때문에 무엇보다 정직한 기업정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시작한 사업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사업은 엿보지 않는 신 명예회장의 경영소신도 유명하다. 이는 신 명예회장이 추진한 사업 대부분이 현재까지 업계 최고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월드 등이 모두 동 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업계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이주현기자 jhjh13@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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