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책 대신 쓰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국회 모 의원실 보좌관이 너무 피곤해 보여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그 보좌관은 전날 '철야' 근무를 하느라 집에 못 들어갔다고 토로했다. 자신이 보좌하는 국회의원의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대필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새웠다는 것이다.
총선 시즌을 맞아 연일 계속되는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를 두고 시선이 곱지 않다. 과거 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 모금 수단으로 악용돼 온 출판기념회가 올해 역시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부상 출처도, 규모도 모호한 현금 봉투를 주고받는 과거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카드 결제만 가능하게 바뀌었지만 어디든 편법은 존재한다. 또 다른 보좌관은 “후원자가 카드로 100권을 결제한 후 책을 1권만 가져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책 한 권에 사실상 몇천만원을 받아도 막을 방법이 없다.
국회의원은 연간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후원금 모집이 가능하다. 그러나 출판기념회에서 벌어들인 모금액은 후원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줄을 잇고 있다.
이 같은 '깜깜이' 출판기념회가 문제지만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그저 비판만 하기도 어렵다. 선거에는 '재원'이 필요하다. 당내 경선이라도 치르려면 1억원 이상 '실탄'은 마련해 둬야 한다. 현역 국회의원이든 예비 주자든 정치를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니 출판기념회 등을 이용, 자금을 두둑하게 마련해야 한다.
끊이지 않는 편법 출판기념회를 없애지 못한다면 차라리 비용 처리와 후원자·후원액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국회의원 정치후원금 한도를 현행보다 늘리는 것이 낫다. 현행 후원금 한도로는 한 해 사무실 비용을 보전하기에도 빠듯하다.
지금의 후원금 한도액을 정해 놓은 때는 2004년(일명 오세훈법)이다. 벌써 시간이 16년이 지났다. 비공식 정치자금이 오가는 일을 관행처럼 여길 일이 아니다. 차라리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서 현실화할 것은 현실화한 후 편법이 드러나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