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하루 남았다.
통상 60갑자를 따져 '경자년(庚子年)'이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지만 새해만큼은 2020년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 그만큼 매년 맞는 색다를 것 없는 새해지만 '2020'이라는 숫자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실제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작품이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꼽은 해가 '2020년'이다. 예전에도 새로운 1000년이 시작되고 다시 20년이 지난 시점에는 무엇인가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억 여부에 따라 세대가 갈릴 법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020년을 배경으로 하는 '공상+과학+만화'다. 기계문명의 폐해와 인간의 이기심 등을 잘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소방차가 주제가를 불렀다는데 기억이 나지 않은 걸 보니 당시(1989년)면 만화 영화를 볼 나이는 아닌 것 같다.
이외에도 '레인 오브 파이어'(2002), '스텔스'(2005), '지.아이.조-전쟁의 서막'(2009), '리얼 스틸'(2011), '퍼시픽 림'(2013),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등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들도 2020년을 배경으로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2020년은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했다.
이런 2020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영화에서 묘사된 미래가 현재로 다가왔다. 영화에서 상상한 기술이 현실화되기도 했지만 지구가 망할 것 같은 불안한 요소는 당장의 위협으로 나타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외계인이나 지구 재앙 등에 불안감을 느낄 나이는 아니지만 1989년의 내가 느끼지 못한 불안감이 크게 다가오는 2020년이다.
2019년 한 해를 돌아보면 지난 현실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처럼 암울하고, 돌아갈 집도 없이 너저분한 차림새로 온갖 질병을 앓고 있는 등장인물 고고와 디디처럼 우울한 군상이 넘쳐나는 것 같다.
끊임없는 기다림에도 고도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더 나은 삶을 찾아보지만 기대하는 삶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 특히 새로운 삶을 기대하는 많은 이에게는 상실감이 더 큰 한 해였다.
1년 전 오늘, 새로운 희망을 얘기하던 2019년이 이렇게 저물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는 2020년이 다가오고 있다.
막상 새해를 맞고 보면 별것도 없는 어제의 일상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새해를 기다려 온 설레는 마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보고 싶은 내일일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희망을 얘기하고, 그 희망을 일궈 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다. 별반 다르지 않는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의 작은 노력 속에 더 나은 내일이 만들어진다.
다행스럽게도 경제가 새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턴어라운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출도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흰색 쥐'의 해는 모든 일이 바닥을 찍고 국민이 뭉치고 단합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풀이를 담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한 2019년을 뒤로 하고 2020년은 '무사식재(無事息災), 평온무사(平穩無事)'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1년 뒤 한 해의 마지막 날, 지나온 1년의 행복한 기억 속에 2021년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