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LG그룹 경쟁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기술입국' 신념아래 현장을 지키며, 연구개발에 힘을 실었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초기부터 회사 운영에 합류해 구인회 창업회장을 도와 회사를 일궜다. 1970년 그룹 회장에 취임할 때까지 20년간 생산현장을 지킨 연유로 한국 2세 경영인 가운데 구 명예회장만큼 현장을 잘 알고 기술을 잘 이해하는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구 명예회장은 럭키크림 생산을 직접 담당하며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사'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손수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펴 크림을 만들고, 박스에 일일이 제품을 넣어 포장해 판매현장에 들고 나가기도 했다. 특히 락희화학과 금성사 부사장에 이르는 동안 부산 범일동공장, 부전동공장, 연지동공장, 온천동공장 등 시설확장 중심에 한결같이 서 있었다.
흔히 경영수업이라고 하면 영업이나 기획, 해외지사에서 출발해 몇 년간 실무를 보다가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경영자로 나가는 것이 익숙한 과정으로 여겨졌다. 이에 반해 구 명예회장은 십 수년 공장 생활을 하며 '공장 지킴이'로 불릴 만큼 현장 수련을 오래 했다.
구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의 신념으로 기술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어 우리나라 화학·전자 산업 중흥을 이끈 경영자였다. 연구개발 결과로 축적한 기술력 덕분에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과 사업 확장이 가능했고, 오늘날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우리나라의 화학·전자 산업 기틀을 마련했다.
구 명예회장은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면서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은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70년대 중반 럭키 울산 공장과 여천 공장에는 공장이 채 가동되기도 전에 연구실부터 만들었다.
대부분의 연구실이 각 공장 별로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76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금성사에 전사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곳에 개발용 컴퓨터, 만능 시험기, 금속 현미경, 고주파 용해로 등 첨단 장비를 설치하고, 국내외 우수 연구진을 초빙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를 집행했다.
또 산업 디자인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1974년 금성사에 디자인 연구실을 발족시키고, 일본 등 디자인 선진국 연수를 지원했다.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여기서는 고분자·정밀화학 분야를 집중 연구해 플라스틱 가공산업 기술고도화를 이끌었다. 1985년에는 금성정밀, 금성전기, 금성통신 등 7개사가 입주한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회장 재임기간 동안 70여 개 연구소를 설립했다.
구 명예회장은 기술 연구개발을 강조하면서 우수 인재 유치와 육성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연구소만은 잘 지어라. 그래야 우수한 과학자가 오게 된다”는 말도 남겼다.
80년대 말 대덕연구단지에 LG화학 종합기술연구원 설립을 추진할 당시 구 명예회장은 프로젝트 출범 초기부터 우수 기술인재 유치를 위한 통 큰 투자를 신신당부했다.
구 명예회장이 강력하게 추진한 기술 연구개발 결과로 금성사는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프로젝션 TV, CD플레이어, 슬림형 냉장고 등 영상미디어와 생활가전 분야에서 수많은 제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내 최고의 가전 회사로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당시를 회상하며 구 명예회장은 “1970년에 냉장실과 냉동실을 분리한 2중 구조의 '투 도어 냉장고'를 개발한 것과, 74년에 개발한 가스레인지, 77년 19인치 컬러TV를 생산한 것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미 공장을 비롯해 현재 LG의 국내 주요 생산거점이 되고 있는 전자 및 화학 분야의 수많은 공장을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1975년 금성사 구미 TV생산공장에 이어 1976년에는 국내 최대 종합 전자기기 공장인 창원공장을 건립했다. 1983년부터 1986년 말까지는 미래 첨단기술시대에 대비해 컴퓨터, VCR 등을 생산하는 평택공장을 구축하며 오늘날 전자 산업 강국의 기틀을 닦았다.
화학분야에서는 1970년대 울산에 하이타이(가루비누), 화장비누, PVC(폴리염화비닐)파이프, DOP(프탈산디옥틸), 솔비톨 등 8개의 공장을 잇달아 건설하면서부터 종합 화학회사로의 발돋움을 본격화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늘어나는 제품 수요에 대응하고 전국적 제품 공급을 원활이 하기 위해 충북 청주에 생활용품 종합공장인 럭키 청주공장을 건설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