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CEO 코드<23>세르게이 브린-디지털 유토피아를 꿈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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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창업자 중 하나인 세르게이 브린은 옛 소련 태생이다. 조부와 부모가 모두 수학자인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브린이 태어났을 때 소련은 미·소 간 냉전(The Cold War) 상태였다. 소련은 미국과 핵무장, 정보전, 대리전, 첩보전과 같은 군비경쟁을 벌였고 우주개발 경쟁도 치열했다. 브린의 부모와 같은 수학자가 필요한 시기였음에도 소련은 유대인에 대해서 차가웠다. 반유대인 정책이 브린 가족을 소련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 미국행을 결심했다. 어린 아들 세르게이를 위한 결정이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과학과 수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수학신동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는 매릴랜드대를 수석 졸업한 후 스탠퍼드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동갑내기 과학천재 래리 페이지를 만난다. 검색엔진 아이디어는 페이지로부터 나왔다. “웹 전체를 다운로드한 다음 링크들을 달아놓으면 어떨까.” 페이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브린에게 공유했다. 브린의 머리는 번뜩였다. 그는 링크뿐 아니라 링크에 연결된 링크까지 계산하고자 했다. 브린은 웹페이지 사이의 연결 관계와 가중치, 연산절차 등 알고리즘 설계에 빠졌다.

두 청년의 창업을 적극 지지한 사람은 제프리 울먼 교수다. 학위에 연연하지 말고 대학을 떠나라고 조언했다. 그들이 개발한 혁신적인 검색엔진 소문은 빨랐다. '자바' 개발 회사로 유명한 선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 창업자들이 총 85만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울먼 교수는 엔젤투자자 슈리람을 소개했고 그는 구글에 25만달러를 투자한다. 슈리람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까지 꼬드겨 구글에 투자하도록 했다. 비전을 품은 창업 꿈나무에 자본의 물이 채워졌다.

구글은 검색을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 전 세계로 시장을 확대한다. 2010년, 구글이 구글차이나 서비스를 중단했다. 중국 정부와 인터넷 검열 반대로 마찰을 빚었다. 중국 정부는 구글이 중국에 진출 시, 중국 법과 규정을 준수하겠다던 약속을 깼다며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브린은 “중국이 자국민을 가난에서 구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치 발언이나 인터넷 통신에 대해서는 전체주의 사고방식으로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며 발끈했다. 특히 중국 반체제 인사의 지메일(Gmail)에 대한 감시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소련 경찰의 방문을 받은 후 아버지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졌다. 우주 물리학자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는 차별 때문에 수학자가 됐다”며 브린은 공산주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는 목격했다. 전체주의 이념 앞에서 개인의 능력과 꿈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 사람으로 기억해주길 원한다. 내가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은, 사람들이 구글을 통해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꿈꾸는 디지털 유토피아다.”

2018년 구글은 중국에 구글맵 서비스를 재개했다. 슬금슬금 서비스 전체가 확대되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눈이 많다. 중국은 돈이 되는 시장이다. 이윤추구는 기업의 목적이다. 세계무대에 선 기업가들에게 중국몽은 유혹이자 현실이다. 그러나 세르게이 브린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이 누린 자유를 중국인이 누리도록 도와줄 때 진정한 디지털 유토피아가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자유가 보장되는 그날까지 세상 밖으로 나올 생각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구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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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인터랙티브 콘텐츠학 박사 sarahs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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