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김명준) 제7연구동 4층 언어지능연구실. 빼곡하게 들어찬 파티션 사이 곳곳에서 경쾌한 타자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은 질문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대답하는 국산 인공지능(AI) '엑소브레인'이 탄생한 곳이다. 연구실 한쪽에서 김현기 언어지능연구그룹 박사 시연으로 엑소브레인과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ETRI가 시스템을 업로드 한 '공공 AI 오픈 API·데이터 서비스 포털'에서 직접 질문도 던질 수 있었다.
답변은 정확하고 빨랐다. 기자가 'ETRI가 뭐야?'라는 질문을 키보드로 입력하고 '분석하기'를 선택하자, ETRI 역사와 조직 구조, 위치 등 답변이 출력됐다. 시간차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ETRI의 연구 영역은 뭐야?'라고 조금 더 복잡한 질문을 던지자 곧장 정보통신 전문연구기관, 정보통신, 실시간 컴퓨팅 등 관련 답변이 높은 정답 신뢰도 순으로 출력됐다.
김 박사는 “자연어 심층 이해와 질의응답 기술을 토대로 정확하고 빠르게 답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의미 최소단위인 형태소 분석, 문법을 따지는 구문 분석, 의미 역할 인식 등을 통해 성능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엑소브레인 기능은 최근 '한컴오피스 2020'에 검색 기능으로 탑재돼 주목을 받았다. 구글 지식그래프와 일반 상식 답변을 비교한 결과 성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엑소브레인은 상용화 돼 있는 'IBM 왓슨'보다 9년이나 지나 시작한 프로젝트다. 왓슨은 프로젝트 시작 7년 뒤인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엑소브레인은 개발 시작 4년 만에 국내 TV퀴즈쇼에서 우승하는 성적을 거뒀다. 이젠 왓슨과 기술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김 박사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기술격차를 줄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연구진은 엑소브레인 활용 범위를 넓혀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법무 분야에 적용해 변호사 대신 간단한 법령 질문에 응대하고, 전문가 답변을 보조하는데 활용할 계획이다. 활용 범위 확대에 따른 일거리,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잡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자리에 함께 있던 허정 박사는 “시스템 메모리가 새는 현상을 발견해 3개월여 동안 해결책을 찾아 고생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분투 이유는 애국심과 책임감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IBM 왓슨과 같은 상용화 사례가 있고, 구글과 같은 거대기업에서도 언어지능 개발에 힘쓰지만 우리도 선진국 못지않은 AI 기술을 확보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김 박사는 “연구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적어도 우리 글을 인식하고 답변을 내놓는 것에 외국 언어지능이 쓰여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