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사장이 중국 원전산업협회 최고책임자를 만나 '한국 원전 부품 구매'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탈원전 정책으로 사업 동력을 상실할 처지에 놓인 국내 기업을 위해 구원투수를 자처한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 부품 기술이 건재하다는 점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삼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정 사장은 30일 “다음 달 6일 경주 하이코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원자력 포럼에서 중국 원자력산업협회 최고책임자를 만나 한국 원전 부품 구매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시아 원자력 포럼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주요 국가 원전산업 최고책임자들이 모이는 자리다. 한수원 사장이 '해외 원전 건설 수주'가 아니라 '국내 원전 부품 수출'에 직접 발벗고 나서겠다고 한 것은 이례다.
중국은 현재 원전 48기(4만5518㎿)를 가동하고 있으며, 신규 원전 9기를(5722㎿)를 건설하고 있다.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원전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다. 2009년 이후 연평균 신규 원전 3~4기를 건설하며 세계 시장 영향력을 확대했다.
정 사장이 중국에 손을 내미는 것은 탈원전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원전 부품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25년 이후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없다는 점을 고려,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중국 구매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른 전략이다.
이와 함께 중국이 선택할 정도로 국내 원전 부품의 우수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대외에 알리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다. '우리 것을 쓰라'는 것은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확고하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중국이 아직 원전 해체 경험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향후 원전 해체 시장 선점까지 염두에 뒀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 사장은 “중국은 그동안 원전 기술을 직접 제공한 국가 이외에 제3국에서 원전 부품을 사들인 전례가 없다”며 우리나라가 이 같은 공식을 깨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 사장은 체코 원전 수주에 대한 성공 가능성도 내비쳤다. 체코는 두코바니와 테멜린에 각각 1GW급 원전 1~2기를 건설할 계획이 있다. 한수원은 올해까지 체코 정부·전력공사와 원전 수출에 관한 보증 관계를 명확히 하고, 내년 상반기 중에 법적 문제도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원전사업제안서'(PTO) 공식 접수 시기는 내년 3분기로 보고 있다.
정 사장은 “영국은 정부가 원전 관련 제도를 바꾸는 단계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에너지부 장관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루마니아·슬로베니아·대만 원전 수주를 위해서도 해당 국가와 접촉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